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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새로운 정보를 입에 맞는대로 해석하는 것에 능통한 존재이다. 그들의 의견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워렌 버핏




확증편향은 본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입장이나 생각을 강화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취사 선택하여 받아들이는 인간의 경향이다. 어떠한 문제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두 사람이 같은 증거를 보더라도 이들은 이를 서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는 증거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데올로기적, 감정적으로 깊은 연관이 되어있는 문제에 대해서 확증편향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편향되지 않은 방식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이는 심각한 오판을 초래할 수 있다. 확증편향이 인간의 사고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어떠한 정보를 접했을 때, 비록 그 정보가 우리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좀 더 주의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은 그의 저서 The Web of Belief에서 다음과 같이 이를 설명했다.

 

옳기를 바라는 욕망과, 옳았기를 바라는 욕망은 우리의 2가지 욕망입니다. 이 둘을 더 빨리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옳기를 바라는 욕망은 진실에 대한 갈증입니다. 실용적이면서도 이론적인 모든 면에서 이를 나쁘게 표현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옳았기를 바라는 욕망은 타락하기 전에 나타나는 자부심입니다. 이 욕망은 우리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방해하며 우리의 지식의 향상을 방해합니다.

 

1960년대 시작된 확증편향에 대한 실험은 우리가 기존의 신념에 대해 의문을 갖거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대신 기존의 신념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다른 연구들 역시 비슷한 결론을 냈다.

 

많은 정신 모델들처럼, 확증편향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처음 밝혀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 중 투키디데스는 인간의 이런 경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것은 헛된 희망에 의탁하고 그들이 선호하지 않는 것들은 그저 멀리 치워 놓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우리가 이런 인지적 지름길을 활용하는 이유는 일견 합리적이다. 눈앞에 나타난 증거를 평가할 때 (특히 복잡하거나 불분명 한 경우) 많은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우리의 두뇌는 지름길을 선호한다. 이렇게 하면, 특히 압박감이 심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많은 진화 과학자들이 지적했듯,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사람들은 평생동안 그리 많은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 인간이 내려야 했던 결정은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매일매일 수많은 복잡한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름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동기적 추론(Motivated Reasoning)의 사례, In the Case of Motivated Reasoning에서 Ziva Kunda는 이렇게 서술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특정 정보에 더 가중치를 주곤 한다.” 우리의 신념과 기존의 생각을 확인하고 뒷받침해주는 정보를 받아들이기는 쉽고 정신적 소모가 크지 않다. 그러나 기존의 생각과 대립되는 정보를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이를 피하고, 이를 거부할 핑계를 찾기 시작한다.

 

The Little Book of Stupidity에서 Sia Mohajer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확증편향은 우리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현실에 있어 근본적인 요소이므로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기존의 믿음과 견해에 부합하는 증거들은 수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거부한다. 세상을 단순화하고 우리의 기대에 맞추려 조정하는 시도에 있어서는 우리는 확증편향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확증편향이 어떻게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는가



 

일단 어떤 의견이 채택되면 인간의 이해는 이와 부합되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끌어내린다. 그리고 이의 반대편에서 발견될 수도 있는 수많은 증거와 사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무시되거나 거부된다.

 

확증편향의 복잡성은 이 개념을 인지하기 전에는 극복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편향된 견해와 모순되는 증거를 보여주었을 때 조차도 우리는 현재의 견해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석할 수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한 연구에서, 사형제에 대해 찬반이 나뉜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두 그룹 모두에게 동일한 두 개의 가상의 연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담긴 자료를 나누어 주고 읽게 했다. 사형제에 찬성하는 참가자들은 첫번째 연구가 사형제의 범죄 억제 효과를 입증하고 있으며 다른 연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사형제에 반대하는 참가자들은 정확이 이의 반대로 대답했다. 이 연구의 결론은, 참가자의 대다수는 본인의 원래 견해에 따라 이를 지지하는 데이터들을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데이터들을 폐기한다는 것이었다

 

확증편향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다. 확증편향은 정보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지게 한다. 이것에 대한 이해한다면 우리의 세계관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리가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바뀌는 것이다. Lewis Carroll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믿는 대로 된다.”라고 천명했지만, 세계 역시 우리가 믿는 대로 받아들여진다.

 

Shannon L. Adler는 이 개념을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했다.

 

슬픔으로 읽으면 당신은 증오를 느낄 것이다.
분노로 읽으면 당신은 복수심을 느낄 것이다.
편집증으로 읽으면 혼란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감정을 이입해서 읽으면 연민을 느낄 것이다.
사랑으로 읽으면 아첨을 느낄 것이다.
희망으로 읽으면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유머감각으로 읽으면 기쁨을 느낄 것이다.
편견 없이 읽으면 편안을 느낄 것이다.
읽지 말라. 그러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

 

확증편향은 우리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계속해서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원래 정보는 중립적이었지만 우리는 선택적 회상을 하면서 함정에 빠지게 된다. 톨스토이도 이에 대해 말한적이 있다.

 

가장 어려운 주제라도 이 주제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세상 가장 멍청한 사람에게라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주제라도 이 주제에 대해 이미 본인이 알고 있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가 세상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도 납득시킬 수 없다.

 


 자신의 믿음과 반대대는 증거를 무시하는 이유


 

신념은 강력한 논리적 경험적 도전에도 맞서 싸워 생존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 없는 모든 사람이 어떤 증거가 그 신념에 반대되는 것이라 생각하더라도 정작 당사자는 이 증거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강화할 수도 있다. 심지어 신념은 원래 그 신념의 근거가 되었던 증거가 파괴되더라도 생존할 수 있다.

 

Lee Ross and Craig Anderson

 

사람들은 왜 본인의 견해와 반대되는 정보를 인정하는데 어려움 겪을까? 확증편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은 이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명백하고 경험적인 증거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기존의 신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심지어 그 신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다는 점이 증명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인지부조화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이는 우리가 인지적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에 노출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 미디어, 우리의 경험 그리고 다른 정보 출처들로부터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의 정신은 이 출처들로부터 접한 수많은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며 다시 불러오기 위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그 중 한가지 방법은 인지적 지름길 혹은 인지적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유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확증편향은 이 방법의 결과로 나타나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휴리스틱 중 한가지이다. 우리가 해석하는 정보는 기존의 신념에 영향을 받으며, 이는 우리가 기존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를 더 잘 끄집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우리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계관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취사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기존의 세계관에 부합되는 정보는 중요하게 다루지만, 그렇지 않은 정보는 회의적으로 다뤄진다. 우리의 일반적인 정보동화에는 깊은 편견이 작용한다. 끊임 없이 우리 스스로의 세계관을 검토하고 재조정하는 것은 매우 많은 정신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에 우리는 단순히 기존의 세계관을 강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또 한번에 여러가지 사상과 개념을 고려하는 것도 어려울 수 있으므로 한번에 한 사상 혹은 개념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순된 증거들을 외면한다우리의 뇌는 이를 너무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Jennifer LernerPhilip Tetlock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직접적인 책임을 질 때만 비판적인 태도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신념이나 기분 혹은 태도를 다른 사람에게 정당화 해야 한다 생각할 때, 확증적인 증거에 대해서 덜 편향적으로 반응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본인이 정확하게 판단하기를 원해서 그런다기 보다는 부정적인 결과나 비논리적이라고 조롱받는 것을 피하고자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증편향의 사례


 


 창조론자 VS 진화생물학자


 


가장 명백한 확증편향의 사례는 창조론자들과 진화생물학자들간의 논쟁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수백만 년에 걸친 생물학적 진화 과정을 밝히기 위해 과학적 증거와 실험을 논거로 든다. 반면 창조론자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보는데, 세계는 겨우 수 천년 전에 창조되었다고 생각한다. 창조론자들은 이를 반박하는 과학적, 실존적 증거들에 의한 인지 부조화를 무력화하는데 능숙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영적 경험과 성경의 존재와 같은 것들)이 진화론에 대한 수 많은 증거들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화석 기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반면, 어떤 창조론자들은 똑같은 화석에 대해 이는 신이 우리의 믿음과 신앙심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또 다른 창조론자들은 화석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홍수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이 음모론적의 주장에 반대되는 명백한 증거들을 단순히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이를 그들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로 받아드린다.

 


 종말론자


 

세계 곳곳의 대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곳에서나 곧 다가올 종말에 대한 예언을 떠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그곳에 가본다면, 종말이 조금 뒤로 미뤄졌다면서 여전히 종말론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설파하고 있는 종말론자를 계속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Leon Festinger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온 마음으로 무언가를 확고히 믿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또 자신이 이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강렬한 믿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이 사람에게 그 신념이 잘못되었다는 명백하고 확고한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절대 그 신념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단순히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그 믿음이 옳은 것이라는 확신만 커질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그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려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동종요법

 

수백만불에 이르는 동종요법 산업은 그 자체가 거대한 확증편향의 결과물이다.

 

동종요법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히스타민을 연구하던 프랑스의 과학자 Jaques Benveniste의 연구가 네이쳐지에 게재 된 것이다. Benveniste는 물이 약효를 기억한다는 이른바 물 기억설 Water Memories’를 주장하며 히스타민을 묽게 해도 약효가 유지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실험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이루어졌고 그 결과 플라시보 효과가 개입되었다. Benveniste는 자신의 가설에 너무 심취하여 그의 가설을 뒷받침 하는 데이터는 맹신했으며 그렇지 않은 데이터는 무시했다. 다른 연구자들이 그의 실험을 반복해서 수행해보았지만, Benveniste가 얻었던 실험결과를 재현해내는 것은 실패했다. 그 결과 그와 함께 연구를 수행했던 많은 사람들은 과학계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동종요법의 추종자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나고 있다. 동종요법의 추종자들은 어쩌다 나타나는 동종요법의 효과처럼 보이는 사례들에는 집착하면서 동종요법이 효과가 없다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들은 철저히 무시했다.

 


 과학 실험

 

오늘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헛소문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헛소문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점은 이들 대부분의 경우에서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리 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Neil deGrasse Tyson 


좋은 과학 실험에서 연구자는 본인의 가설을 틀리다고 생각해야한다. 기본적으로 틀리다 생각하고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는 과학계에서 그리 자주 보여지는 풍경은 아니다. (동종요법의 사례처럼) 과학자들이 실험 데이터를 편향되게 해석하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실험을 반복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현실이다. 확증편향은 과학자들의 논문 검토 작업을 할 때도 흔히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거나 혹은 과학계에서 이미 어느정도 인정한 연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부적절한 연구 프로그램에서 이미 여러 증거들이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드러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될 수 있다. 확증 편향은 엄청난 시간과 자금을 낭비한다. 우리는 과학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확증편향이 개입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결론


 

우리의 눈은 이미 마음속에서 이해한 것 만을 본다.

Robert Davies

 

이 글 또한 확증편향의 영향력에 노출되어 있을 수 있다. 아래 체크리스트를 보면서 정말 그런지 다시한번 확인해보도록 하자.


     1.     이 글의 어떤 부분을 고민 없이 자동적으로 받아드렸는가?

2.     이 글의 어떤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고 무시하였는가?

3.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부분에서 어떻게 반응했는가?

4.     이 글에서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강화하는 부분이 있는가? 왜 그런가?

5.     만약 있다면 그 생각에 대해 반대되는 의견을 말해보라.

 

확증편향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확증편향이 하는 역할을 인지할 수 있으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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