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사이가 좋지않은 지인에게 연락할 일이 생겼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전화도 받지 않고 메세지도 확인안한다. 이런 상황에서 십중팔구는 지인이 당신을 피한다고 직관적으로 결론을 내릴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도 제대로 안하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확증편향은 믿음에 대한 바램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나 개념이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경우, 그냥 사실로 믿게된다. 이런 경향은 희망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는데, 확증편향은 지금까지 수집 된 증거가 사실로 믿고 싶은 견해(편견)에 부합할 때 더 이상의 증거 수집을 중단하도록 유도한다.
일단 특정한 특정한 의견을 가지게 된 경우, 그 의견에 반하는 정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면서 그 의견에 부합하는 정보를 더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확증편향은 우리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이미 가지고 있는 편견에 부합하여 안심시켜주는 정보만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설정한 가설의 노예가 된다. 예를들어, 가수 수지의 화보가 로리타 컴플렉스를 자극한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한번 수지의 화보가 로리타적 요소가 있다고 믿은 사람은 작가와 수지가 어떠한 해명을 하고, 화보의 컨셉을 밝혀도 온갖 세부적인 부분들을 확대해석하여 끝까지 부적절한 화보라고 주장하게 된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특히 세상은 위험한 것들로 가득차있다고 믿는 편집증 환자에게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예를들어, 자존감이 낮아 다른 사람에게 무시받는 것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사람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는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포착하게되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자신에게 적대적이라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호의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태도도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확증편향은 일종의 자기기만의 하나의 형태이다. 잘못된 형태의 낙천주의라고나 할까. 예를들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 이거는 살이 안찌는거야. 내일 부터는 담배를 안피워야지, 소주 3,4잔 정도는 운전하는데 큰 문제 없겠지.
이런 자기기만은 마약과도 같다. 가혹한 현실을 잊게하고, 곤란한 문제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한다. 볼테르가 말했다시피 "망상만큼 즐거운건 없다" 물론 어떤 특정한 상황에선 자기기만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예를들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특정 종류의 암과 같은 병과 싸우는데 도움이 된다. 회복할수 있을거라 믿는 것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주어서 면역체계와 약이 좀더 잘 작용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믿고싶은걸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믿음과 어긋나는 증거를 찾는 것은 이상하게 느껴지는 한편 믿음에 대한 확신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이것이 유언비어가 퍼지는 이유이다. 괴벨스가 말했듯이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 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확증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틀렸다는 증거를 찾아보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 자기-확신의 올바른 의미일 것이다. 당신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할때, 구성원들이 독립적으로 내놓는 의견들을 모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들어, 경찰조사과정에서, 다수의 목격자들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 증언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증언을 듣기전에 서로 의견을 나누게 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의 영향 없이 선입견이나, 편견없는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링컨 대통령이 자신과 이념이 반되되는 정치적 경쟁자들로 내각을 채우고, 반대편과의 열정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책을 결정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