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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가 대단한 사람인건 분명하다. 아이비리그 로스쿨 출신 변호사, 남편인 빌클린턴의 정치적 동반자, 영부인, 국무장관 까지 역임하였고, 트럼프와 비교가 되지 않는 공직 경험이 있다. 대통령으로 취직하기 위해 자소서를 쓴다면 이보다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기에 미국의 모든 언론이 지지하고 수많은 기업들과 월가에서 기부금까지 지원해줬으니, 사실 클린턴이 이번 대선에서 이길것이라 호언했던것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8년전 오바마에게 경선에서 패배했을때도 힐러리는 자신이 유리천장을 깨지 못해서 졌다하였고, 이번에도 유리천장때문에 패배하였기에, 다음세대의 소녀들이 유리천장을 부숴주길 당부했던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요인만 제외하면 다른 모든 조건이 완벽했기에. 그러나 이번 대선의 패배로 사실이 들어났다고 생각한다. 힐러리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까지 올라갔던 것이 아니라, 여성이었기에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위에서 말한 힐러리의 스펙 모두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8년전 오바마때도 그러하였고, 이번 샌더스열풍과 트럼프 당선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민심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1%가 아니라 99%의 시민에게 주권을 돌려달라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뒤엎어 버리길 원한다고. 그리고 그 시스템의 중심에는 월가가 존재한다.

이미 지나간 오바마는 차치하더라도,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샌더스는 힐러리와 다르게 월가 등 자본가들로 부터 기부금을 받지 않았고 트럼프 역시 기부를 안받은건지 못받은건지 거의 모든 선거과정을 자기 돈으로 치루어내었다. 그랬기에 월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개혁을 말하고 변화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실제로 개혁을 이루어낼지 아니면 월가와 결탁을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유권자들에게는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눈앞에 월가의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는 힐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골드만 삭스의 임직원을 대상으로한 비공개 강연에서 비위를 맞춰주며 수십만 달러의 강연비를 받은 힐러리와 자신도 사업을 해봤기에 월가와 워싱턴이 얼마나 쿵짝이 잘맞는지를 알고있다며 자기가 박살내주겠다고 말하는 트럼프. 누구에게 표를 주겠는가.

미국의 유권자들은 정치인들과 자본가들. 그들 1%만의 리그가 지겨웠고. 근 30년간 제도권 안에서 차근차근 그 모든 리그를 통과한, 그것도 최우수 선수였던 힐러리를 지지할수 없었던 것이다. 힐러리는 진보적인 여성 대통령이라 주장할지 모르지만, 유권자들 입장에서 바라본 그녀의 이미지는 ‘구태 정치인’ 그 자체일 것이다.

비근한 예지만 우리나라 대선과 비교해보면 힐러리는 차라리 2002년 경선에서 노무현과 경쟁한 이인제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혹시나해서 덧붙이지만 트럼프가 노무현과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이 비슷하다는 말은 아니다.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경력부터, 노동부장관 도지사, 국회의원에 재직하며 실무경험까지 쌓고, 대선후보 출마경험도 있었던 이인제가 국민참여경선에서 변화를 표방하였던 노무현에게 패배하였다. 이인제는 인지도도 높았고 대세론까지 등에엎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풍에 무너지고 말았다. 정치개혁을 바라던 유권자들이 뇌물스캔들에 얽혀있던 이인제를 버리고 노무현을 택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모든것이 완벽했던 힐러리마저 뚫어내지 못한 유리천장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두껍고 단단한 것일까 절망하고있는 것 같다. 다시 묻고싶다. 과연 힐러리가 유리천장을 뚫지 못하고 주저 앉은것일까? 레임덕을 비웃는 높은 지지율을 가진 전임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말도 안되는 비율로 집중된 정치후원금, 사실상 전 언론이 불렀던 힐러리 찬양가. 게다가 상대는 또라이 아웃사이더 트럼프.

이런 긍정적인 배경을 가지고도 패배했다면 상식적으로 유리천장을 운운하면서 남탓을 하기보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진짜 유리천장이 패배의 원인이었다면 언론은 트럼프를 찬양을 하고 정치후원금은 트럼프에게 향했어야 하지 않을까?

유리천장이 있다하더라도 그 분들의 말처럼 이번이 그 지겨운 유리천장을 깨부숴버릴 완벽한 기회였다. 월가에서 다이아몬드로 천장까지 다다르는 계단을 만들어주었고, 언론은 가날픈 송곳대신 그녀에게 광선검을 쥐어주었으니까. 그래서 힐러리의 후보수락연설처럼 자라나는 세대들은 여성대통령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것을 망친것은 힐러리 본인이었다.

이라크전 찬성에 대한 말바꿈, 시리아 내전 개입 실패, 벵가지 스캔들, 이메일 스캔들, 건강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패배에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건 그녀가 지난 30년 세월동안 쌓아올려온 스펙과 월가 유착논란이다. 수많은 공직과 정치활동은 적어도 이번 선거에선 마이너스 요소였다. 바로 그 지난 정치에 대한 회의와 분노가 트럼프를 찍은 이유였고, 여기에 더해 클린턴 부부가 월가로부터 천문학적 액수의 후원금과 강연비를 받았다는 것은 월가에 분노하고 있는 유권자의 표심에 정확히 반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힐러리가 여성이기 때문에 받은 불이익이 무엇인가? 그녀는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정계입성에 가장 큰 공헌을 했던것이 르윈스키 스캔들을 용서했다는 것이었고, 2008년에도 최초의 여성대통령을 주장하며 대선에 도전했고, 이번에도 변함없이 여성대통령을 말하며 다시 도전하였고 실패하였다. 힐러리에게 여성대통령이란 타이틀을 제외하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힐러리는 분명 뛰어난 인물이다.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그러나 그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제외한다면 다른 정치인들과 다른것이 없다. 이번과 같은 선거에서는 더더욱말이다. 계속해서 말하지만 언론과 월가의 소위 1%와 결합하였고, 쇠락하는 제조업의 현실에 분노하는 노동자들을 외면하며, 외국인 노동자, 자유무역 확대를 주장하였다. 트럼프의 해결책이 미국을 위해서도 그리고 그 노동자들을 위해서도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트럼프는 유권자들이 가지고 있는 현 정치인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정확하게 건드렸고 힐러리는 외면했다는 것이다.

미국사회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역시 유리천장이 없다고 우기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아직까지 여성이라서 차별받는 부분도 분명히 있고, 여성이라서 인정받기 힘든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힐러리가 여성이라서 이번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주장하는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포퓰리스트한테 진거라고 말한다면 어느정도는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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