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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독재자를 사랑하는가?

category # 생 각 들 2018. 3. 1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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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를 사랑하는 이유


왜 사람들은 지난 수천년 동안이나 반복적으로 권위주의적 독재자를 반겼는가? 수많은 철학자, 정치 이론가들은 왜 우리가 기꺼이 독재자에게 굴복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오늘날 권위주의적 정권이 전세계적으로 부상함에 따라 이 같은 질문은 더욱 중요해졌다.

 

독재자의 문제점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하고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었다. 기원전 약 380년경에 쓰여진 국가론에서 플라톤은 민주주의는 붕괴되어 독재로 이어질 운명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의 스승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방탕하고 규율 없는 대중을 양산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들을 속여넘길 수 있는 화술을 가진 정치인들의 희생양으로 만든다고 믿었다. 국가론과 같은 시기에 쓰여진 고르기아스에서 플라톤은 우리에게 정치인들이 공익을 위하기 보다는 허황된 약속으로 대중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제빵사가 의사 마스크를 쓰고 몸에 좋은 음식이 무엇인지 제일 잘 안다는 듯 행동한다. 그리하여 어린아이 혹은 어린아이와 같은 수준의 사람 앞에서 둘 중 몸에 좋은 음식에 관한 전문가가 누구인지 경쟁해야 한다면, 의사가 지게 될 것이다.

 

막스 베버막스 베버


시계를 빠르게 돌려 2500여년 후인,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업적을 살펴보자. 사회학의 창시자중 한명인 베버는 카리스마적 권위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카리스마적 권위란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초자연적, 초인간적 혹은 최소한 특별한 힘이나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지도자의 자질을 의미한다. 카리스마적 지도자는 추종자로 하여금 헌신을 불러일으키며, 예언자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베버의 통찰력은 플라톤의 대략적인 설명을 심화시켰다. 성공한 독재자들은 특별하며 거의 마법과도 같은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추종자들은 그가 기적을 일으켜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켜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을 이렇게 따르게 만들 수 있을까? 무엇이 이성적이었던 사람들에게 이토록 위험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주장을 따르게 만들었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갈 볼 필요가 있다.

 

베버가 베를린에서 카리스마 이론을 연구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 빈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드 역시 비슷한 주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 집단심리학과 자아의 분석’(1921)이라는 논문으로 출판되었다. 집단 심리학은 추종자들의 심리적 역학상태에 주목했다. 프로이트의 대부분의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여기에는 눈에 띄는 두가지 주요 주제가 있다. 우선, 프로이트는 권위적인 지도자에게 끌리는 추종자들은 지도자를 우상화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도자는 어떠한 결점도 없는 모범적이고 영웅적인 사람으로 그려진다. 둘째, 프로이트는 추종자들이 생각하는 이성적 자아를 지도자에 대입하고, 동일시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적 자아는 한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따라서 옳고 그름, 의무적인 것과 허용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믿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도자와 이성적 자아가 동일시 되면서, 추종자들에게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행동은 추종자들의 선악판단의 근거가 되고, 그의 발언은 추종자들에겐 절대적 권위가 된다. 지도자의 의지가 무엇이건 간에 추종자들에겐 그것이 선이고 정의가 된다.




나치와 권위주의 지도자


프로이드의 논문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일어난 일을 예견하는 것과 같았다. 알폰소 헥스의 사례를 살펴보자. 어린 시절 알폰소 헥스는 나치 유겐트의 일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헥스는 게슈타포가 그의 마을에서 유대인들을 체포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오랜 친구도 이 때 체포되었다. 그런데 헥스는 이를 보고 유대인을 추방하는 것을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나치가 선전하던 유대인의 위협을 떠올렸고, 그의 친구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유감으로 생각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다시 이 일을 떠올리면서 유대인의 추방을 정의로운 일이라 생각했던 것을 기억했다.

 

추종자들이 권위주의적 지도자와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결과를 낳게 된다. 추종자들은 서로를 새로운 운동에 동참하는 동지로 여기게 되고, 이 과정에서 집단에 통합되는 새로운 경험을 한다. 조화 그리고 단결에 대한 중독적인 심리와 개인의 이익을 더 큰 가치에 종속시키는 것은 권위주의 체제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독일의 제 3제국과 히틀러로 대변되는 많은 권위주의적 수사에서 이 같은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단지 인종 혹은 공동체의 부속품일 때 가치가 있다는 생각, 그리고 개인의 사소한 감정을 넘어서 더 크고, 더 위대한 정신적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는 생각은 히틀러의 독일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독일의 어린이들은 인종간의 결혼을 거부하며 혈통을 순수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배웠다. 독일인들의 피는 단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과거, 현제, 미래로 이어질 독일 민족에게 속한 것이며, 이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에 동참하는 것은 분명히 종교적 경험과 비슷하다. 순수한 무언가를 위해 더 큰 힘에 복종하고, 개인의 자아가 가지고 있는 경계를 허무는 경험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 권위주의는 영원한 생명, 부활 그리고 구원에 대한 열망을 일깨운다. 히틀러의 등장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성격은 역사가 로렌스 리즈의 책 "The Dark Charisma of Adolf Hitler"에 잘 나타나 있다.

 

베르히테스가덴에 위치한 히틀러의 집을 방문하는 독일인들은 거의 순례자와 같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국 총통관저에 저마다의 탄원을 보냈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가 연출한 거의 종교 집회와 같은 우상화. 독일 어린이들은 히틀러를 신이 보낸 사자라 배웠다. 히틀러는 일반적인 정치인 보다는 차라리 신의 손길이 닿은 예언가처럼 보였다.

 

이 점을 염두해 둔다면, 프로이트의 환영의 미래”(1927)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록 종교 심리학과 매우 큰 관련이 있긴 하지만, 정치적 배경과 내용을 무시하면 안된다. 1927붉은 빈(Red Vienna)’에 살고 있던 어떤 유대인도 부상하고 있는 반 유대주의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1926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언어는 독일어입니다. 내 문화와 내 전공 역시 독일어입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반유대주의가 발호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 나는 독일의 지식인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 정체성은 유대인입니다.

 

그가 언급한 환상 중 하나는 바로 문명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오직 독일민족 뿐이었다.

 


종교적 환영과 전체주의


동시기, 오스트리아의 정치세력은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후원을 받는 우파 성향의 기독교 사회주의자와 좌파성향의 사회민주당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팽팽하던 긴장감은 1927715일 폭발했는데, 대규모 시위에 나선 좌파들은 빈 대학 점거를 시도했다. 빈 대학은 프로이트의 아파트에서 불과 몇 분거리에 위치하고 있었고, 시위는 도보로 약 20분정도 떨어진 대법원 앞에서 절정에 달했다. 시위대는 건물에 불을지르기 시작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했고, 3시간 후 89명의 시위대와 5명의 경찰이 차가운 길바닥에 시체로 변해 있었다. 그날, 그리고 그 다음 이틀은 ‘Schreckentage, 공포의 날로 기록되었다. 프로이트와 같은 빈의 지식인들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그들의 조국에 깊게 드리운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독일 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칼 마르크스의 전통을 따라, 종교적인 믿음은 환영이라 주장했다. 다만 프로이트는 환영과 실재를 구분하는 것은 그것의 사실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왔는지에 달린 것이라 생각했다. 환영은 우리가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라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대게 거짓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 중 일부는 정말 사실일대도 있다. 예를 들어, 그 전날 밤에 매우 좋은 꿈을 꾸어서 로또를 샀고, 정말 우연히도 1등에 당첨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전날 밤에 아주 좋은 꿈을 꾸어 로또에 당첨될 것이란 믿음은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여전히 프로이드의 환영에 불과하다.

 

가장 강력한 환영을 우린 망상이라고 부른다. 망상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그것을 부채질하는 거대한 욕망의 강력한 힘 때문에 논리적인 수정에 매우 저항력이 강한 환상이다. 종교적인 신념은 프로이트의 망상에 관한 가장 중요한 사례이다. 프로이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것은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하며, 가장 시급하게 원하는 것들의 집합체이다. 망상이라는 힘의 비밀은 이러한 소망들의 힘에 있다.

 

종교적 믿음을 뒷받침하는 희망들은 인간의 무력함으로부터의 해방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질병, 자연재해 그리고 죽음과 같은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하다. 또 우리는 우리를 해치고, 죽이고, 부당하게 대우할 수 있는 다른 인간의 행위에 취약하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유아 시기 경험했던 완전한 무력함에 대한 기억 즉, 우리를 보살펴 주었던 어른들에 대한 완전하고도 끔찍한 의존이라는 유아시절의 기억이 지배한다 생각했다. 사후세계를 약속해주는 강력하고 보호적인 신이라는 환상에 집착함으로써 종교인들은 그들의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라 프로이트는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종교적 충동에 대한 분석과, 정치적 영역에서 작용하는 심리학적 역학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 정치는 명백히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대응이다. 우리의 가장 깊은 희망과 공포는 정치분야에 스며들고, 이것이 우리를 정치적 환영에 취약하게 만들며, 이성적인 논쟁을 어렵게 만든다. 이런 관점에서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는 일신교를 모방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신과 같이 전지 전능하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지도자의 말은 현실의 한계를 규정하고, 지도자는 찬양 받고 신격화 되며 절대 도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도자의 적은 죄악 그 자체가 된다.

 

만약 종교가 그저 소망을 이루어 주는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면, 종교는 모두 달콤하고 가벼운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으느 그렇지 않다. 천국에 대한 달콤한 약속은 오직 지옥의 위협에 대비될 때 의미가 있고, 구원은 구원받을 필요가 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금욕, 고통 그리고 순교자일 경우엔 고문과 죽음이라는 값을 치루고라서도 말이다.

 


로저 머니 키를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의 좀 더 어두운 면을 탐구하기 위해서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국 귀족 출신의 정신분석가 로저 머니-컬레를 인용하도록 하겠다. 로저 머니-컬레는 18세에 영국 육군 항공대로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1917년 북부 프랑스에서 격추당해 군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전재이 끝난 후, 그는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캠브리지 대학에 입학했으나 곧 철학으로 분야를 바꾸었다. 그 당시 캐브리지의 많은 사상가들처럼 머니-컬레는 정신 분석하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22년 빈으로 건너가 비엔나 서클의 리더였던 모리츠 슐리크와 함께 박사과정을 마쳤다. 1926년 영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인류학에서 두번째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정신분석학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로저 머니 키를로저 머니 키를


1932년 머니 키를은 그의 친구이자 외교관인 아던 옌켄의 초대로 베를린을 잠깐 방문하게 되었다. 옌켄은 그를 괴벨스와 히틀러가 연사로 나선 나치 집회에 데리고 갔다. 머니 컬레는 나치 집회에 매료된 한편 불편함을 느꼈다. 때문에 그는 정신 분석 방법을 통해 연설과 군중들의 역학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1941년 출판된 선전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Propaganda”였다.

 

그가 독일을 방문하던 시기, 머니 키를은 헝가리 태생의 영국인 정신 분석가 멜라니 클라인의 지적 영향아래 있었다. 클라인은 모든 인간들이 정신적 불안이라는 심오하고도 무서운 두려움들에 시달린다고 주장했다. 클레인은 이러한 걱정과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좋든 나쁘든 간에 인간의 행동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클레인 학파는 인간에겐 2가지 기본적인 형태의 정신적 불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영원한 힘인 악에 의해 박해 받는다는 편집증적인 불안과 누군가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치를 파괴해버릴 것이라는 우울증적 불안이었다. 클라인은 또한 조증적 방어(Manic Defence)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했는데, 이는 무력함을 거부하며, 권력, 위엄과 자기 만족이라는 망상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증적 방어는 대게 승리, 정복, 경멸이라는 태도로 나타나게 된다.


괴벨스선동의 귀재 괴벨스

 

머니 컬레는 이 같은 클레인의 정신분석 방법을 통해 나치의 수사학을 분석했다. 그는 히틀러와 괴벨스가 청중들에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집단적 정신병을 유발시켰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설 그 자체는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관중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사람들은 점차 그들의 개성을 잃어가며, 지적이지 않지만 엄청난 힘을 가진 하나의 괴물로 융화되는 것 같았다. 오르간 몇 개를 한번에 연주하는 것과 같이 쉽게 대중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연단위의 사람들이 이 모든 과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다.

 

히틀러와 괴벨스의 행동을 관찰한 후, 머니 키를은 정치적 선전이 효력을 발휘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중들의 무력감을 불러일으킨 후 마법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먼저, 선동가는 대중들을 낙담하게 만든다. 대중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무엇인가가 파괴되었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굴복했다. 그들은 너희를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그들은 위대한 운명을 가진 독일 민족을 배신했다!’ 머니 키를은 이렇게 기록했다.

 

10분동안 우리가 들은 것은 전쟁으로 인해 독일 국민이 겪은 고통에 관한 내용이었다. 괴물은 자기 연민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 다음 단계는 몇몇 소수자들이나 외부인들에게 이 고통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었다. 사악한 자들이 외부에서 우릴 공격하고, 내부에서 반역을 일으켰다 주장한다.

 

그리고 그 다음 10분은 유대인과 사회 민주주의자들이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 맹렬하게 비난을 퍼부었다. 자기 연민은 증오로 바뀌었고, 괴물은 이제 살육에 나서려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단계는 무력감에서 오는 공포를 치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자기 연민과 증오로는 충분치 않았다. 두려움을 떨쳐 내는 것 또한 필요했다그래서 선동가들의 어조는 비난에서 자기 찬양으로 바뀌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치 당은 무적이 되어갔다. 모든 청중들은 자기 안에서 전능한 나치의 일원이 되어갔다. 새로운 정신병에 걸리기 시작했다. 우울증은 편집증으로 변했고, 편집증은 과대망상으로 발전했다.

 

히틀러의 잘 짜여진 각본에 따른 결말은 단결에의 호소였다. 머니 키를은 이것이 권위주의적 리더의 선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줄 수 있는 것이 천둥 밖에 없다면,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받들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는 증오를 쏟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결론에서 그는 긍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지상 낙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낙원은 진정한 독일인과 진정한 나치 추종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외부의 모든 이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할 존재였고, 그리하여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나치의 인종개량 프로젝트 - 생명의 샘 Lebensborn 프로그램


나치의 수사학에 영감을 받아 이 같은 연구를 하긴 했지만, 머니 키를의 연구가 나치의 사례에만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어떤 저널리스트가 도날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후보의 연설을 따라다니면서, 머니 키를의 이론을 대입해 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연설의 대부분의 머니 키를이 나치 집회에서 확인했던 선동의 단계와 유사했다고 한다.


트럼프의 거짓말 그리고 "진실한 과장"

팩트가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


지도자들의 권위주의적 호소에 대한 정신분석이 옳든 그렇지 않든 간에, 권위주의적 지도자에 대한 대중들의 갈망의 심리적 원천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권위주의적 환영의 매력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찾아내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한번 전체주의라는 심연으로 이끌리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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