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조작될 수 있을까?

기억은 무척 미묘하다. 진실과는 형제관계라 할 수 있지만, 쌍둥이는 아니다.

 

한 소설가의 이 말은 의외로 매우 과학적인 사실을 지적한 것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 마치 단단한 비석위에 새겨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기억은 정확하고 틀림이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최근 인지 과학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억은 얼마든지 조작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것도 매우 쉽게.

꿈을 통해 생각을 심어넣는 내용의 영화 인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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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과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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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심리학계는 꽤나 무서운 동네였다. 많은 심리치료사들은 트라우마 경험으로 인해 충격적인 사건을 기억 못할 수 있으며, 심리치료를 통해 잊고 있던 ‘억압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말로 손님들을 끌어 모았다.

 

환자들은 심리치료를 통해 학대당한 기억을 떠올리기 시작했는데, 충격적이게도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부모였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로부터 학대당했으며, 이를 잊고 지냈다는 사실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고, 그 기억의 편린들 조차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부모들은 심리치료사들을 고소하게 되었다.

 

이 시기 스탠포드 대학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와 같은 심리학자들은 ‘억압된 기억’이라는 개념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억압된 기억’이란 없으며, 심리치료사들이 환자에게 ‘가짜 기억’을 주입했다고 주장했다.

 

로프터스 교수는 심리치료사가 환자에게 어떻게 ‘가짜 기억’을 주입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진은 친척이 말해준 실험 참가자의 어린시절에 관한 2개의 이야기와 5살 때, 쇼핑몰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가짜 이야기를 하나의 책자로 만들었다.

 

먼저,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이 책자를 보고 각각의 이야기에 대해 얼마나 기억하는지 글로 써 내도록 지시했다. 만약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냥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기록하라 했다. 그 다음, 참가자들은 연구진과의 개인 인터뷰에서 다시 이 이야기들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참가자의 1/3은 책자를 읽은 직후 쇼핑몰에서 부모를 잃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렸고, 참가자의 1/4은 이후 인터뷰에서 잃어버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웨스턴 워싱턴 대학의 연구에선 참가자중 20%가 실제로는 없었던 가짜 생일잔치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고, 18%는 가짜 교통사고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연구 결과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에 대해 떠올려 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실제 심리치료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임의의 사건을 골라 참가자들에게 유아시절에 이런 일이 있지 않았느냐 물어보았다. 2주후 개별 인터뷰에서 무려 1/4 이상의 참가자들이 실제 그런 사건을 겪었다는 대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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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기억과 가짜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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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터스 교수에 따르면, 3가지 요소가 작용할 때, 이 같은 ‘가짜 기억’이 쉽게 형성된다고 한다.

• 기억을 떠올려 보라는 압박감
• 어떤 일이 있었을지 상상해보라는 격려
• 기억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을 차단

이 3가지 요소는 범죄 수사과정에서의 심문 그리고 심리 치료와 같은 중요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한 언론 미디어의 미묘한 뉘앙스가 우리의 기억과 생각을 완전히 왜곡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짜 뉴스’가 가진 진짜 위험이다. 다시 되돌리기 어려울 ‘가짜 기억’을 너무나 쉽게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심리치료 과정에서 부모에게 학대 당했다는 가짜 기억을 떠올리고 이를 철통같이 믿어, 가족과 소송전을 벌이며 원수가 되어버린 사례가 너무 많이 발생했다.

 

그러면 소중한 기억과 ‘내 자신’을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위협에서 지킬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은 존재한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우리의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쉽게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