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된 후 거의 1세기만에 남성 피임약이 마침내 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있다. 그러나 언제나 신약개발을 주도해왔던 다국적 대형 제약사가 아니라 인도 시골의 대학에서 시작하는 조그만 스타트업 기업이 그 주인공이다.
주사형태의 정자 억제제에 대한 지난 수년간의 임상실험이 거의 끝나가고 있으며, 규제당국의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결과에 따르면, 남성용 피임약은 기존의 피임약보다 더 싸고, 효과적이며, 사용하기 쉽지만, 제약회사에는 그리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이 신약이 콘돔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개발자들은 번번히 고개를 숙여야했다.
남성들을 위한 새로운 피임 수단은 다국적 제약회사인 바이엘, 화이자 등이 장악한 1조 달러에 이르는 전 세계 여성용 피임시장과 3천200억 달러에 이르는 콘돔시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인도에서 개발하고 있는 이 신약은 10달러 정도로 가난한 국가에서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으며 수년간 유효한 피임수단이 될 수 있어 매번 콘돔 사용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을 끝내고, 매일 복용해야하는 여성용 피임약의 대체수단이 될 수 있다.
WHO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피임약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2억2천5백만명에 이르는 여성들의 부담을 이 신약이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 이외의 국가에서는 미국의 한 비영리 단체만이 이 신약의 개발에 동참하고 있다.
남성용 피임약을 개발한 생의학자인 Sujoy Guha가 신약을 개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로 이 약을 판매할 회사를 찾는 것이었다고 한다. 다국적 대형 제약회사들은 남성용 피임시장에 대해 적대적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남성용 피임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백인 중년 남성들이 이 회사들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남성용 피임약을 거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여성들이 이 회사를 운영했다면, 많은 것이 달랐겠지요.” Organon International에서 중요한 신약개발에 책임자로 참여했던 부인과 교수인 Herjan Coelingh Bennink는 이렇게 말했다.
Huha의 신약은 남성의 정관에 주입되는 고분자 젤을 사용한다. 마치 녹은 초콜릿과 같은 묽기의 이 젤은 정관내에서 장벽을 형성하여 정자의 머리와 꼬리를 방해하고 정자의 생식 기능을 억제한다.
가역적 정자 유도 억제 (RISUG, Reversible Inhibition of Sperm Under Guidance)라 알려진 이 치료법은 말 그대로 두번째 주사를 통해 젤을 용해시킴으로써 간단히 피임을 끝낼 수도 있다.
이 약은 콘돔과 같은 조건하에서 98% 이상의 피임성공률을 보여주며, 부작용 역시 없다고 한다. 인도에서 이미 540명 이상이 임상실험에 참가하였으며, 시술을 받고도 13년이 지난 후에도 약효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피험자도 있다.
이번에 규제당국에 제출한 신청서는 RISUG를 영구적 피임방법으로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물론 원하면 얼마든지 피임을 끝내고 다시 생식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 역시 같이 제출될 것이라고 한다. 인도에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더 많은 여성들이 출산계획을 필요로 하는데, 사회적 낙인과 시선 때문에 콘돔을 구매하는 것이 여의치 않기에 남성의 콘돔 사용율은 6%가 안된다.
인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남성들은 피임문제에 있어서 뒷짐을 지고 있는 경향이 크다. UN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의 약 60%가 경구 피임약 혹은 다른 방식의 현대적 피임약을 사용한 반면, 콘돔을 사용한 남성은 8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난 1990년대 남성용 피임약을 출시하려 했던 네덜란드와 독일 제약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용 피임약은 여성용 피임약 시장의 대략 50% 이상을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예상되는 주 소비층은 원치 않는 갑작스러운 임신을 피하고자 하는 남성들과, 장기간의 관계에 있는 커플들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 제기되었던 문제는, 과연 남성용 피임약 출시가 회사의 수익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당시 회사는 남성용 피임약 출시를 포기했다.
2008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UN이 공동으로 기금을 지원한 연구에서 호르몬을 조절하는 남성용 피임약도 계속해서 개발이 시도 되었다. 이 호르몬 피임법은 다른 피임법보다 효능이 ‘비교적 양호’했으나, 안전성 검사 직후 폐기되었다. 피험자들에게서 감정기복이 빈번하게 일어났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사실 이와 같은 부작용은 여성용 피임약에서도 이미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2006년 이 남성용 피임약 개발회사를 인수한 바이엘은 모든 개발을 취소시켰다. 비록 허용범위 내에 있는 부작용일지라도, 이와 같은 부작용의 불편함 때문에, 충분한 소비자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남성용 피임약은 화이자와 같은 다른 제약회사들도 그리 선호하는 연구분야가 아니다. 이들은 여성용 피임약 시장에서 이미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부작용은 차치하고라도, 남성용 호르몬 피임약을 시장에 출시하려면 약 1억달러와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것이 바로 Guha가 맞이한 딜레마이다. 해외 시장에서 무엇이든 하려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지만, 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곳은 제약업계밖에 없다.
제약업계의 무관심에 직면한 Guha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인 Parsemus Foundation에 RISUG 기술을 라이센싱했다. 인도 이외의 지역에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함이었다.
Parsemus는 Vasalgel이라는 자체 버전으로 개발 중이며,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에서는 1인당 10~20달러 정도에, 선진국 시장에서는 1인당 400~600달러 정도의 가격에 출시할 예정이라 밝혔다. 지금까지 Parsemus는 16마리의 원숭이들을 상대로 한 실험에서 5개월~24개월동안 피임을 유지하는데 성공했으며, 지금은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한 임상시험을 위한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Guha는 India IcubedG Ideas Pvt. Ltd.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그의 조국 인도에서 관련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1월 뉴델리의 산업구역에 공장을 마련하였으며,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 대량 생산을 위한 준비도 갖추고 있다. 실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3쌍의 커플도 나타났다.
39살의 일용직 노동자 Knikar Ari는 그의 아내와 함께 더 이상 아이를 갖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정관 수술 혹은 절관 절제술을 고려했지만, 그에게는 수술과 회복에 걸리는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사회복지사들이 Ari의 커플에게 Guha의 시술을 소개해 주었고, Ari는 이 연구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국소마취에 걸린시간 15분 그리고 30분 정도 걸리는 본 시술이 끝나고 Ari는 2.5Km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으며, 2일뒤 생업에 복귀할 수 있었다. Ari는 수술의 결과에 만족하며 나머지 2커플도 빨리 수술을 받도록 설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에 힘입어 Guha는 더 적극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비록 특허권은 만료되어 실제로 기술이 실용화되더라도 아무런 이익을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말이다.
“왜 여성들만이 출산의 부담을 독박써야하는 걸까요? 좀 더 평등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Guha는 3쌍의 커플들이 모두 시술을 받고 떠나던 날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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