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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의 공포와 인터넷의 기원 (2)

category # 역 사 2017. 3. 1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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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간 동안 군대는 심리학에 깊게 빠져들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 초 펜타곤은 1,50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심리학에 관한 사회 과학 연구에 배정하였는데, 이는 2차 대전 이전 군사 연구 전체 예산을 능가하는 규모이다. 당연히 펜타곤의 관심과, 스미소니언 연구 그룹의 권고는 단순한 세뇌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미소니언 연구 그룹의 수장 Charles Bray는 심리학에 관한설득과 동기 부여에서부터인간 기계, 과학자-컴퓨터 시스템’과 같은 컴퓨터의 역할에 대한 논문에 이르는 광범위한 분야의 논문을 작성하였다. 스미소니언 연구 그룹은 마침내 국방 연구 및 엔지니어링 국장에게 ARPA가 행동 과학과 컴퓨터 과학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프로그램을 실시해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이 권고는 국방부 관계자에 의해 2개의 연구 과제로 구분되어 ARPA에게 전해졌다. 첫번째는, 행동과학에 과한 과제였는데, 세뇌의 심리학에서부터 사회의 정량적 모델링이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었고, 두번째는, 지휘 통제에 관한 연구였으며 주로 컴퓨터에 관련되었다.

 

펜타곤은 ARPA의 지휘 통제와 행동과학에 관련된 연구과제를 별개로 취급했지만, 스미소니언 연구그룹의 기록은 이 연구과제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 두 연구는 모두 인간 행동에 관한 연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는 인간과 인간과의 상호작용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과 기계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였다. 컴퓨터에 관심이 많은 심리학자보다 누가 더 이 연구에 적합하겠는가?

 

Licklider는 테크 기업인 Bolt, Beranek and Newman Inc.의 연구 심리학자였다. 1961 5 24 ARPA는 그에게행동 과학 위원회의 자리를 제안하였다. 관계자들은 이 일이 힘들고 어려울 것이라 말했으며 당시 대부분의 공직이 그리하였듯 보수 또한 많지 않았다.

 


Licklider의 원 전공은 음향에 대한 인지에 대해 연구하는 음향 심리학이었지만, MIT의 링컨 연구소에서 소련 폭격기를 탐지하는 방법을 연구하면서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링컨연구소에서 Licklider Semi-Automatic Ground Environment(SAGE) , 소련 폭격기를 추적하기 위해 23개의 대공기지를 연동하게 해주는 냉전시기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참여했다. 인간 오퍼레이터는 SAGE 컴퓨터를 이용해서 영공에 침입하는 소련 폭격기에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산출할 수 있었다. 이 것은 본질적으로 핵전쟁 시나리오에 대한 의사결정 도구였고, 영화 WarGames(1983)에서부터 터미네이터 시리즈(1984-)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에 등장한최후의 날(Dooms day) 컴퓨터개념의 원조가 되었다.   

 

하지만 SAGE가 실전가동 될 때 즈음엔 이미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출현으로 인해 거의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Licklider와 같이 당시 SAGE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이 경험으로 인해 컴퓨터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SAGE 이전에, 컴퓨터는 일괄처리를 사용하는 거대한 메인 프레임이었다. , 천공카드를 이용하여 프로그램을 한번에 하나씩 입력하면 컴퓨터가 계산 후 답을 내놓는 것이었다. 이 개념에 따르면 누군가가 하루 종일 앉아서 컴퓨터와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SAGE가 개발되면서 오퍼레이터들은 사상 처음으로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시해주는 개인 콘솔을 사용하였으며, 더 중요한 점은 오퍼레이터들이 버튼과 펜을 이용하여 콘솔을 통해 직접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SAGE는 사용자가 직접 지휘를 내릴 수 있는 상호작용 가능한 컴퓨터의 시초였으며, 여러 사용자가 단일 컴퓨터로 작업할 수 있는 시분할 기능을 도입한 첫 번째 컴퓨터였다.

 


Licklider는 SAGE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랙티브 컴퓨팅에 대한 현대적인 개념을 구상했다. 사람들이 컴퓨터가 설치된 큰 방으로 들어가서 펀치카드를 기계에 넣고 숫자를 계산할 필요 없이 개인용 콘솔로 책상에서 작업하는 것이었다. 요상하게 생긴 대형 컴퓨터가 대학이나 정부기관의 연구실에 자리잡고 주로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던 시기였던 1960년대 당시만해도 현대의 평범한 컴퓨터의 모습을 구상한 것은 엄청나게 혁명적이었다. 이러한 구상에서 단일 사용자가 단일 목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일괄처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신 원격 콘솔 사용자들이 단일 컴퓨터의 리소스를 활용하여 거의 동시에 여러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했다.

 

Licklider의 논문 ‘Truly SAGE System; 사고를 위한 인간-기계 시스템을 향하여’는 이 새로운 접근법을 개괄하는 최초의 선언문이었으며, 이 논문 덕분에 Licklider는 컴퓨팅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과학자 그룹의 리더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1960년, 그는 훗날 인터넷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드러낸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개념을 더욱 진보시키는데 성공했다. ‘인간-컴퓨터 공생’이라는 단순한 제목을 가진 이 논문은 평범한 컴퓨터 과학자의 논문이 아니었다. 이 논문의 서두에서 그는 이렇게 서술하였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벌(Blastophaga grossorum)에 의해서만 수분된다. 이 곤충의 애벌레는 무화과 나무의 씨방에서 살고 거기에서 먹이를 얻는다. 무화과나무와 무화과벌은 이렇게 상호의존적이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벌 없이 번식할 수 없고, 무화과벌은 나무 없이는 먹이를 얻을 수 없다. 이들은 함께 생존과 생식을 도와주며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 닮지 않은두 종의 유기체가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거나 혹은 가까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을 공생이라 부른다.

 

사람과 기계 사이의 공생은 근본적으로 그 당시의 일괄처리 컴퓨터와는 차이점이 있었다. 또한 앞으로 등장할 것이라 예상되는 생각하는 컴퓨터 즉, 강 인공지능과도 거리가 있다. Licklider는 진정한 AI는 사람들의 예측보단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으며, 그 사이에 인간과 기계의 공생이 대세가 될 중간 시대가 있을 것이라 예측하였다. 그가 그린 그림은 광대역 통신 회선으로 서로 연결되고 전용 회선 서비스로 개별 사용자에게 연결되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었다.

 

Licklider의 목록에는 군사용 목적이 확실히 우선순위에 있었다. 어쨌거나 그의 아이디어는 SAGE에서 시작되었고, 그의 논문은 군 지휘관들의 관심사항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구상은 훨씬 더 광범위했으며, 논문에서 그는 신속한 결정을 필요로 하는 기업가들과 소장도서들을 서로 연결하기를 원하는 도서관 등이 이를 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Licklider는 사람들이 단순히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과 기계가 상호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길 원했다. 개인용 콘솔, 시분할, 네트워킹 등 이 논문에서 현대 인터넷의 모든 토대를 제시한 것이다.

 

이러나 이 모든 것들은 아직 전망에 불과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기초가 되는 기술을 개발해야했다. 1962 ARPA Licklider에게 제안한 자리는 낮은 임금, 높은 스트레스 그리고 설립된 지 겨우 4년이 지난 하청업체였다. 직원들은 모두 계약직이었고, 겨우 몇 년 정도 버티면 오래 버틴 것이었다. Licklider에게 제시된 계약기간은 겨우 1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 제안을 수락했다.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의 컴퓨터 네트워킹에 대한 전망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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