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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엔 잊혀진 영웅들이 너무나도 많다. 다른 사람이 이들의 공적을 가로챘을 수도 있고,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서구사회가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의 영웅들을 고의적으로 지워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븐 알 하이삼, Ibn al-Haytham, أبو علي، الحسن بن الحسن بن الهيثم이 바로 유럽인이 아니라 오늘날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비운의 과학자. 아니 과학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양반이다.


 

이븐 알 하이삼은 965년 오늘날 이라크의 바스라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대부분의 업적을 남겼다. 비록 자세한 활동 내역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긴 하지만, 이집트에서 이븐 알 하이삼의 확실한 행적 2가지가 있다 첫째, 그의 지적능력은 너무나 뛰어나서 빠르게 명성을 얻었다는 것, 둘째,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큰 문제에 도전한 후, 주변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렸다는 것.

 

이집트에서 그가 맡았던 첫번째 대규모 사업은 바로 나일강의 홍수를 막기 위한 댐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아스완 댐의 위치한 장소에 그 당시 기술로 댐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븐 알 하이삼은 칼리프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미친척을 했고, 이 때문에 그는 가택연금을 당하게 된다.



과학의 아버지


하지만, 온갖 과학서적이 가득한 집에서 연금을 당하는 것을 이븐 알 하이삼은 오히려 바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10여년간의 가택연금 기간동안 그는 빛이 직선으로 운동하며, 거울의 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빛이 물을 통과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밝혀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말 그대로 과학을 창조해낸 것이었다. 이 말이 너무 거창하다 생각된다면, 최소한 그는 과학적 방법을 최초로 제시했다. 이븐 알 하이삼은 어떤 현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실험을 통해 증명을 했고, 또 검증을 할 수 있도록 실험 방법을 명확하게 공개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빛의 운동에서부터 행성의 운동 그리고 건축과 공학에 이르기까지 40여개 이상의 학문적 발견에 관한 실험 내용을 철저히 문서화해 세상에 공개하였다.

 

오늘날 이븐 알 하이삼의 이름은 세계에 그리고 서구에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시간을 수 백년만 돌려, 당시의 유럽으로 돌아가보자. 그의 이름은 지금보다 당시의 유럽에 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광학의 서였다. 광학의 서는 그의 사후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의 사상가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이 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로마자 표기에 따라 알 하젠으로 알려졌는데, 로저 베이컨, 요하네스 케플러,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의 책을 읽었다.

 

17세기의 달에 관한 유명한 논문이었던 월면도(Selenographia)”에는 대중들이 사랑했던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름과 함께 이븐 알 하이삼의 이름이 권두에 함께 올려져 있었다. 이 사실만 보더라도, 유럽의 과학은 알 하이삼의 과학적 방법에 의해 큰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자세한 그의 업적은 


이븐 알 하이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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