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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가 실패한 이유

category # 역 사 2017. 11. 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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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117, 11월 혁명의 결과로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했다. 그 결과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었고, 그 밖에 많은 국가에서 공상주의 정권이 등장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의 100주년을 맞은 지금, 공산정권이 세계에 퍼트린 억압, 폭압, 대량 학살과 같은 광범위한 영향에 대해 다시한번 되돌아 보자.

 

역사가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공산정권의 광범위한 악행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악행이 얼마나 거대했는지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 우리는 이 끔찍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대량학살과 독재의 기록


전 세계의 공산정권의 대량학살 기록을 모두 합치면 피해자는 약 1억명을 상회한다. 가장 큰 규모의 학살은 사유재산을 가진 지주 계급을 없애고 농업을 집단화하려 시도했던 과정에서 발생했다. 중국에서만 마오쩌둥의 주도로 일어난 대약진 운동 기간동안 대략 45백만명 이상의 인민들이 굶어 죽었고, 이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던 단일 대량학살 기록이다.


대약진 운동중국의 대약진 운동 기간중 약 45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스탈린이 이끌었던 소련의 집단농장화는 다른 공산정권의 롤모델이 되어 대략 600~1천만 이상의 피해자를 야기했다. 대량기근은 북한에서 에티오피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모든 공산정권 치하에서 발생했다.

 

공산정권은 본인들의 정책이 이 같은 대량살상을 야기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정책을 고집했는데, 이는 대게 굴라그수용자들의 절멸을 주안점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굴라그시베리아에 위치한 소련 굴라그의 수용소


이 같은 집단농장 정책이 가장 큰 학살의 원인이었지만, 공산정권은 다른 형태의 대량학살에도 관여했다. 수백만명이 소련의 굴라그 그리고 이를 본 딴 북한의 노동교화소와 같은 유사한 기관에서 죽어갔다. 물론 스탈린의 대숙청그리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같은 전통적 방식의 대량학살 역시 횡행했다.

 

공산주의의 악행은 대량학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 엄청난 혼란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운이 좋은 자들 역시 언론, 종교의 자유, 재산권을 잃었고, 일상적인 경제활동마저 범죄로 규정되는 암울한 시대를 겪어야 했다. 공산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그 어떤 폭정에서도 이 같이 삶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려 하지는 않았다.

 

베를린 장벽냉전의 상징적 장소였던 베를린 장벽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역사에서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할 것이라 약속했지만, 현실로 나타난 것은 광범위한 빈곤이었다. 공산국가와 비공산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경우, 목숨을 위협하면서 더 많은 기회가 있는 사회로 떠나려 하는 국민들을 막았던 것은 언제나 공산국가였다. 

 


왜 공산주의는 실패했는가



유토피아를 꿈꾸던 공산주의


인간의 자유를 말하던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압제와 폭정 그리고 죽음을 불러왔는가? 공산주의라는 야심찬 계획은 본질적으로 실패할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특정한 통치자 혹은 국가의 어쩔 수 없는 결함 때문에 실패한 것일까?

 

역사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위대한 진보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의 실패의 원인이 하나로 귀결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공산주의에는 실패의 원인이 내재되어 있다.

 

공산정권이 가하는 잔학한 행위의 가장 중요한 원인 두가지는 바로 이것들이다. 비뚤어진 인센티브와 부족한 정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중앙 계획 경제와 중앙 계획 사회의 수립은 엄청난 권력 집중을 필요로했다. 공산주의자들은 궁극적으로 국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이상적인 사회를 꿈꾸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가 통제하여 국민들의 이익에 최적화된 생산을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점에 있어서는 공산주의자와 다른 사회주의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공산당의 권력집중


사회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관료들에게 모든 재화의 생산과 분배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국민들이 사유재산을 포기하게 하며,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에서 일하게 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강제력이 필요하다.


 

기아, 대량 학살은 분명히 소련, 중국 그리고 북한을 비롯한 다른 공산국가의 통치자들이 농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땅과 가축을 포기하고 집단 농장에서 사실상 농노의 지위를 받아들이게 하도록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산주의 체제를 수립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권력은 당연히 공공의 이익보다는 본인의 사익추구를 우선시 여기는 야심가들과 파렴치한 자들을 유혹했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행위가 부패한 공산당원이 아닌 레닌, 스탈린, 모택동과 같은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은 인상적이기는 하다.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자들이었기에 이들은 유토피아적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통치자들에 의한 방대한 잔학 행위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반면, 반대로 일반 사람들을 위한 인센티브를 파괴했다. 시장이 없었기에 노동자들은 효율적으로 일하거나 혹은 소비자들을 위한 유용한 물건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대한 인센티브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공식적인 직장에서는 가능한 열심히 일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진짜 노력은 암시장을 위한 것이었다. 소련의 농담처럼, 노동자들은 일하는 척 했고, 정부는 임금을 주는 척했다.

 

사실 사회주의 계획자들이 진정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했더라도, 여기에 필요한 정보가 극히 부족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하이에크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구로 이를 정리했다.

 

시장 경제는 가격체계를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달한다. 시장 가격은 생산자가 다양한 재화와 용역의 상대 가치를 알 수 있게 하며, 소비자들이 본인들의 상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준다


사회주의 중앙 계획 경제하에서는 반대로, 이 중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 그 결과 사회주의 계획자들은 어떤 재화를,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생산해야 할 것인지를 알 길이 없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 국가들이 일상적으로 필수적인 재화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동시에 수요가 거의 없는 조악한 상품들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공산주의의 실패에 대한 변명


오늘날, 사회주의 중앙 계획 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실패가 체제에 내재된 본질적인 결함이기 보다는, 피할 수 있었던 우발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한다. 아마도 이 같은 주장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만약 계획 경제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원활하게 작동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소련과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은 모두 독재 국가였다. 만약 이들이 민주적이었다면, 지도자는 체제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 충분한 인센티브가 있었을 것이며, 만약 실패한다면 다음선거에서 실패자는 쫓겨났을 것이다.

 

불행히도, 만약에 공산주의 국가가 민주적으로 출범했다하더라도, 이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강력한 야당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야당은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며, 대중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공산주의에서는 국가가 정치선전활동을 장악했다.


모든, 혹은 거의 모든 사회적 자원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경제 체제에서, 여당은 이 같은 자원이 야당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쉽게 차단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야당이 국영 미디어를 통해 본인들의 메시지를 전파하거나, 집회와 토론을 하기 위해 국유 재산을 사용할 수 없다면, 정상적인 야당의 활동은 불가능하다. 거의 모든 공산 정권이 정권을 장악한 후, 야당을 탄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만약 어떻게든 공산국가가 민주적인 체제를 오랫동안 유지한다 치더라도, 여전히 정보와 인센티브의 부재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공산국가가 민주적이냐, 아니냐에 관계 없이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여전히 광범위한 권력의 집중과 강압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적 사회주의 계획가들은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계획가들과 동일한 문제를 겪을 것이다. 또한 정부가 경제 전체 혹은 대부분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유권자가 국가의 다양한 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다른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겪고 있는 역병과도 같은 정치 무관심은 이런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특징 때문에 공산국가에서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공산주의 실패의 원인에 대해 가능한 또다른 설명은 바로 책임이 나쁜 리더십에 있다는 것이다. 스탈린이나 모택동과 같은 괴물이 공산 정권을 이끌지 않았다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공산당 정부에서 일반적인 다른 사회에 비해 잔인하며 사이코패스적인 지도자를 더 많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의 결정적인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성격을 가진 지도자들이 공산국가를 이끌 때에도 비슷한 결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굴라그와 비밀경찰과 같은 압제에 관련된 기관이 스탈린이 아닌 훨씬 정상적인격을 가지고 있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통치시기에 설립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레닌의 사후, 스탈린의 주 경쟁자였던 레온 트로츠키는 스탈린보다 더욱 과격한 정책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도자의 성격이 실패의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보다는 공산 정권에서는 언제나 끔찍한 사람을 권력의 정점에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차라리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것은 공산주의를 채택한 국가의 문화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다.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인 러시아에는 오랜 부패, 권위주의, 억압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 정권이 이전 러시아 역사와 비교하기 힘든 엄청난 규모의 억압과 대량학살이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공산주의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전세계 수많은 국가에서 동일한 실패를 겪었다. 한국, 중국, 독일과 같이 공산정권과 그렇지 않은 2개의 정부가 들어선 지역에서 공산정권은 끔찍한 실패를 겪었지만, 시장경제가 들어선 같은 문화를 공유한 반대편에서는 훨씬 성공적인 경제를 건설하였다.


언제나 밝게 빛나는 지역은 자본주의 진영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공산주의의 끔찍한 실패와 억압은 거의 모든 생산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주의 경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물론 이 같은 비극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겠으나, 사회주의 경제와 억압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나치가 저지를 범죄는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이 가지고 있는 위험에 대한 강렬한 교훈이듯, 공산주의가 저지른 범죄는 사회주의의 위험을 가르쳐주고 있다. 공산주의의 역사가 경제에 대한 어떠한 형태의 정부의 개입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부가 경제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통제하며 사유재산을 폐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주의 하에서 발생하는 정보와 인센티브 문제로 인해 중앙집중식 대규모 생산 통제는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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