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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로그-브리앙 조약은 전쟁을 막았는가?

category # 역 사 2017. 9. 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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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리석은 조약


역사가들에게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조약을 선정해보라고 하면, 아마도 높은 확률로 1928켈로그-브리앙 조약을 뽑을 것이다.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전 세계 63개국이 전쟁을 금지하기로 약속한 조약이다.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은 너무나 야심 찬 목표였다. 한낱 종이 쪼가리로 인류역사와 함께해 온 전쟁을 영원히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는 단순히 어리석은 것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순진한 생각이었다.


켈로그-브리앙 조약1928년, 프랑스 외무부 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이 켈로그-브리앙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그리고 켈로그-브리앙 조약에 대한 이런 비판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약 체결 10년후,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비준했던 국가 중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2차대전도 막지 못했으며, 한국전쟁, 아랍-이스라엘 분쟁, 인도-파키스탄 전쟁, 베트남 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 그리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시리아 그리고 예멘에서의 전쟁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켈로그-브리앙 조약에 대한 이런 비판은 옳지 못하다. 비록 켈로그-브리앙 조약이 모든 전쟁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 전까지 국가들 사이에 전쟁의 주 원인이었던 정복전쟁을 억제하는데 매우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은 경험적 분석에 의해 증명되는데, 뉴욕 타임즈는 1816년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군사적 정복에 대해 조사했다.

 

그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1928, 즉 켈로그-브리앙 조약이 체결되기 이전에, 각 국가는 전쟁을 선포할 권리가 있었다. 만약 어떤 국가가 다른 국가에 의해 침략을 받으면 여기에 맞서서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자위권이 당연히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국제법은, 정복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인정했다. 이 말은 즉, 전쟁을 통해 전리품, 영토, 심지어 노예를 획득함으로써 얻는 국익을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정복할 수 있는 권리는 그 정복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어떤 호소를 하더라도, 정복자는 전쟁을 통해 얻은 모든 것의 합법적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전쟁을 선포할 권리가 얼마나 남용되었는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켈로그-브리앙 조약으로 인해 전쟁이 불법이 되면서, 지난 수천년 동안 모든 국가들이 따랐던 거의 모든 규칙이 완전히 바뀌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가 더 이상 무자비한 힘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없어졌다는 것이다. 전쟁은 이제 자위권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불법이 되었기 때문에, 정복할 수 있는 권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물론 침략자는 강제로 타국의 도시와 영토를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빼앗는다 하더라도 국제법적으로 빼앗은 도시와 영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게임의 규칙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변화가 명목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현실적인 변화를 가져왔을까?

 

데이터가 보여주는 대답은 그렇다이다.



줄어든 전쟁


뉴욕타임즈는 예일대학교와 함께 1816년부터 현대까지 있었던 모든 정복 전쟁에 대해서 조사했다.

 

먼저 1816년부터 켈로그-브리앙 조약이 체결된 1928년 사이 기간동안, 대략 10달에 한번 꼴로 정복전쟁이 일어났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기간동안 각국가는 매년 평균 1.3%의 확률로 정복전쟁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1.3%라는 숫자가 그리 높은 확률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매년 1.3%의 확률로 정복전쟁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한 개인의 일생에서 한번 이상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수치이다.

 

그리고 이 정복전쟁의 규모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1816년부터 1928년사이 매년 평균 295,487km2 가 정복전쟁의 전리품이 되었다.

 

2차 대전 이래로, 정복전쟁은 거의 사라졌다. 매년 일어나는 정복전쟁의 횟수는 평균 0.26까지 급감했다. 4년에 1번 꼴이었다. 매년 다른 국가에 정복되는 영토의 넓이는 평균 14,949km2로 역시 급감했다.

 

그리고 매년 한 개인이 전쟁에 휘말릴 확률 역시 1.33%에서 0.17%로 하락했다. 이 말은 거의 1000년에 한번 혹은 두 번 정도만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켈로그-브리앙 조약 체결 후 20년 동안(1929~1948) 역시 각 국가들의 행동에 급격한 변화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비록 이 기간동안 정복 전쟁이 멈추지는 않았으나, 이 시기 정복된 영토는 다시 원 주인에게 반환되었다. 1948년 이전, 각 국가들에 의해서 정복되거나 정복당한 엄청나게 넓은 영토는 이후 원 주인에게 반환되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다음과 같다. 반환된 영토는 1939년 시작된 세계 2차대전 중에 강탈당한 영토 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승전국이었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2차대전을 통해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지 않았으며(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에 약간의 국경 조정은 있었다.) 연합국은 만주를 중국에 반환하고, 이탈리아로부터 에티오피아를,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독립시켰고, 독일이 점령한 유럽의 영토 역시 전부 반환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바로 소련이다. 소련은 연합국 중 유일하게 전쟁후에 대규모 영토를 획득했다. 조세프 스탈린은 평화의 대가로서 많은 영토를 요구했다. 그러나 다른 강대국들은 이런 소련의 요구를 장래에 따라야할 선례라기 보다는 합의된 국제법 하에서 유감스럽게 발생한 예외적인 상황으로 받아드렸다.

 

2014년 크림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불법 합병은 아마도 위와 같은 주장의 반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오늘날 정복이 얼마나 희귀한이변인지에 대한 정확한 예시로 삼을 수도 있다.


 

1928년 이전, 각 국가들에 의해 매년 정복된 영토의 넓이는 오늘날 크림 반도의 약 11배에 달했다. 그러나 2014년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불법으로 여겼으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켈로그-브리앙 조약의 체결로 인해 국가 사이에 정복전쟁이 멈추었다 생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핵무기의 등장이나 자유 무역의 증가와 같은 다른 요소들의 기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각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가 정복수단이 아닌 억제수단이라 주장할 때 켈로그-브리앙 조약의 가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떠올린다. 전쟁보다 제재를, 합병보다 무역을 선호하는 것을 볼 때, 켈로그-브리앙 조약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느낀다.

 

핵무기나, 자유무역으로 전쟁의 종식을 설명할 때 충분하지 않은 요소는 바로 이것이다. 바로 전쟁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것.

 

켈로그-브리앙 조약은 그리 어리석은 일 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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