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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category # 생 각 들 2016. 6. 2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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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통령님 드립

오늘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오유에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꽤 재미있게 눈팅을 하던 사이트여서 흘러들어간김에 베오베 글을 정독하다가 흥미로운 글을 발견하였다.


글을 요약하자면 글쓴이가 술마시고 취한기분에 단톡방에서 박근혜 대통령 드립을 쏟아내었다는 내용이다. 다음과 같이 말이다.

글쓴이의 대통령님 드립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으로 시작한 글쓴이의 드립은, 박정희와 코렁탕을 거쳐 마지막에는 오유에 잠입한 일베 스파이를 주제로한 소설로 장대한 막을 내린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직접 방문해서 한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유쾌하게 즐겼다.

그런데 위에 캡쳐된 글쓴이의 카톡을 보면, 그리고 본문을 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대통령이 떠오를 것이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너무 열정적으로 조롱을 하다가 이젠, 어둠의 노사모라고 까지 불리는 일베 유저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패턴과 너무나 닮았다. MC근혜 어쩌구 하는 것 부터가 MC무현과 너무나 닮았지 않은가.


일베충들이 좋아하는 대통령님 드립

2. 중력절 vs 탕탕절?

똑같이 ‘대통령님 드립’을 하는 오유와 일베 유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이를 즐기는 편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러한 드립들을 응원하는 편에 가깝다. 내 스스로는 이런 드립을 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권력을 조롱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까진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곳곳에서는 이런 드립들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일베 유저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날을 ‘중력절’이라 희화화 하며 ‘운지’라는 요상한 단어로 이를 조롱하자 반대측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에게 총격을 맞고 암살당하자 이 날을 ‘탕탕절’이라 부르며 김재규를 ‘재규어 열사’로 추대하며 반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논쟁이 일어날 때 문제가 되는 부분은 크게 3가지이다.

1. 호불호를 떠나 어떠한 사람의 죽음을 조롱하며 희화화 해도 되는가?
2. 대상을 단순히 비난 하기 위한 낮은 수준의 풍자도 용인 해야 하는가?
3. 독재자로서 온갖 악행을 저지를 자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동일 선상에 놓고 조롱해도 되는가?

온갖 곁가지들을 다 떼어놓고 본다면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고인드립을 허용해도 되는가?
2. 저질 드립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3.악인만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가?

물론 여기서 3번째 논점은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의 견해일 것이다. 문제는 커뮤니티에서 이와 같은 논쟁이 벌어지면 대게 한쪽은 ‘반인반신을 추종하는 남조선 경북괴 통구이 일베충’이 되고 반대편은 ‘친노종북좌빨 전라디언 홍어’로 전락해버린다. 애초에 시작이 진영논리에 의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선택적 노출이론에서 말하듯이 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주장에 부합하는 내용만을 듣고 말하기 때문에 건전한 토론이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실제 토론 내용도, 풍자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기 보다는 ‘누가누가 더 나쁘냐?’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풍자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특히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키보드 워리어들의 뻘짓으로 넘어 갈 것이 아니라,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언론의 자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주장하고 싶은 것을 주장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지는 권리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에서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통신·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 37조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보다시피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국민의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나,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침해하면 안된다는 제한이 있으며, 그 밖의 경우에도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반면 미국은 수정헌법 첫 머리, 제 1조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Congress shall make no law respecting an establishment of religion, or prohibiting the free exercise thereof; or abridging the freedom of speech, or of the press; or the right of the people peaceably to assemble, and to petition the Government for a redress of grievances.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시민의 발언의 자유(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의회는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수정 헌법 1조는 미 연방 대법원에서 내린 기념비적인 결정에 종종 이름을 올리곤 한다.

미국 시민의 특권 중 하나는 공적의 일에 대하여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일에 관련되어 있는 공직자(Public Official)와 공적 인물(Public Figure)은 해당 인물에 대한 발언이 ‘실질적 악의’를 담고 있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명예훼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한 New York Times vs Sullivan 판례(1964)
월남전 기밀 문서를 보도한 것은 정당하며 간첩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결한 New York Times vs United States 판례(1971)

이 밖에 수정헌법 제 1조를 근거로 하여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많은 판례들이 존재한다. 언론의 자유와 그로인해 보장되는 자유로운 의견의 교환이 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지탱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의 자유에 특정인을 마음대로 비난하고, 조롱하고, 혐오할 권리가 포함되는가? 박근혜 대통령을 닭대가리로 비유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쥐새끼로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을 코알라와 합성하여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까지 용인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 또 총격을 당해 죽은 아버지를 희화화하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이른바 고인 드립도 받아줘야 하는 것일까?

닭근혜, 쥐명박, 노알라

실제 법 적용이 어찌되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으나, 위의 사진 처럼 특정인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면 우리나라 헌법 조문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로 보호를 받기는 힘들 것이다.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 라고 명백하게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을 받는 것이 진정한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문제로 인해 키보드 배틀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고인드립을 치는건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다, 표현이 너무 저급해서 안된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런 더러운 글들이 보이지 않게 금지어로 지정하고, 회원탈퇴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말한 키보드 배틀 중심 쟁점 3가지를 다시 떠올려 보자.

1. 고인드립을 허용해도 되는가?
2. 저질 드립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3.악인만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가?

그리고 이런 의문에 정확히 부합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존재한다. 물론 그 근거 역시 수정헌법 제 1조에 두고 있다.

4. 래리 플린트 vs 제리 폴웰

미국 최고의 성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독교 성직자에게 고소를 당했다.

문제의 Campri 광고 패러디

그 원인이 아주 가관인데, 위의 사진이 바로 허슬러 잡지에 실린 양주 Campari 광고의 패러디이다. 존경받는 기독교 지도자를 술 광고의 모델로 삼은 것부터가 심히 ‘불경’스럽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내용이었다. 영어로 Mother Fucker에 더하여우리말로 ‘니 애미 창년’을 시전한 것이었다.

광고는 제리 폴웰 목사의 인터뷰를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이….

제리 폴웰 목사가 첫 경험에 대해 말하다!

폴웰
: 내 첫 경험은 버지니아(처녀) 주 린치버그 교외의 한 옥외 화장실에서였습니다.
기자: (조여서)좁아서 좀 불편하지 않았나요?
폴웰: 그놈의 염소를 차서 쫓아낸 뒤엔 그렇지도 않았지요.
기자: 음, 한번 자세히 얘기해주시죠.
폴웰: 난 사실 엄마와 그 짓을 하리라곤 전혀 기대치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마을의 모든 남자들과 놀아나는걸 보고는 생각했지요. “까짓 거 뭐 어때!”
기자: 하지만 엄마랑? 그거 좀 이상하지 않나요?
폴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한텐 여자의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기자: 계속하시죠.
폴웰: 그게, 우린 그 때 우리의 신성한 엉덩이로 캠파리, 진저 에일, 소다-그걸 지옥의 고통이라 부르죠-를 다 마셔버렸었죠.
그리고 엄마는 100달러 기부한 침례교 창녀보다 나아 보이더라구요.
기자: 엄마랑 같이 변소에서 캠파리를… 흥미롭네요. 그래서, 어땠나요?
폴웰: 캠파리는 죽여줬죠. 근데 엄마는 내가 싸기 전에 뻗어버렸더라구요.
기자: 다시 시도해보셨나요?
폴웰: 물론이죠… 수없이 많이요. 다만 변소에선 아니고요.
엄마랑 똥 때문에 파리가 견딜 수 없이 많았거든요.
기자: 지금 캠파리 얘기하고 있는데요.
폴웰: 오, 네. 난 항상 설교하러 가기 전에 실컷 들이키죠. 내가 그 지랄을 맨정신으로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죠?
 
당신의 첫경험을 절대로 잊을 수 없을겁니다!

당연히 이 내용을 본 폴웰 목사는 대노해서 래리 플린트와 허슬러지를 고소한다. 명예훼손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주 법원은 명예훼손에 관한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다만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15만 달러를 책정하였다.

앞서 언급한 설리번 판결에 따라 공적인 인물은 악의가 없는 비판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의 책임을 지울수가 없다. 더군다나 플린트는 저 패러디 아래에 작게 ‘패러디이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오’라고까지 적어놓았기 때문에, 이성이 있는 정상적인 시민이라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폴웰의 명예가 훼손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 법원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저질’ 패러디를 통하여 ‘고의적 정신적 충격’을 주었기에 폴웰 목사의 정신적 피해를 인정하여 15만달러를 지급할 것을 명령하였지만, 플린트는 이 조차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연방 대법원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연방 대법원에서는 만장일치로 플린트의 손을 들어 폴웰 목사 ‘개인’의 정신적 피해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의 주요내용을 인용해본다.

수정헌법 1조의 핵심은, 공익의 문제에 있어 생각과 견해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인정하는데 있다. 자기 생각을 피력할 수 있는 자유는 그 자체로 바람직한 개인적 자유의 일면일 뿐만 아니라, 사회가 진실을 지향하며 활력을 발휘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이기도 하다. 
……
비록 거짓된 발언은 잠재적으로 어떤 공적 가치도 없다 할지라도, 사회가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어느 정도 ‘여유’를 두어야 한다. 이는 곧 거짓된 발언조차 종종 용인되어야 함을 뜻한다. 그러한 용인이 없다면, 헌법적 가치가 인정되는 발언의 자유에조차 있어서는 안될 악영향이 미치게 될것이다.
 
확언하건데, 하위의 법에 의하면 타인을 감정적으로 상처입히기 위한 목적의 언의 자유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그러나 공인에 대한 발언의 경우, 명백히 거짓된 언임이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언급된 개인이 입은 감정적인 상처를 근거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허용한다면, 이는 정치풍자 만화가들이나 냉소가들에 대해 고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정치적 풍자만화나 캐리커쳐는 종종,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한)육체적 특징이나, 정치적으로 망신스러웠던 사건 등을 소재로 삼는다. 그러한 풍자는 풍자되는 대상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폴웰은 <허슬러>에 게재된 패러디 광고는 너무나 ‘괘씸’하여 수정헌법 1조의 면책 보장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괘씸함’이란 개인의 주관에 불과하며, 평결을 내기 위해 배속된 배심원들 개개인의 주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감정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발언자에게 배상책임을 묻는 행위를 오랜 세월 동안 배격해온 본 법원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판결문이 말하는 바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공적인 일에 관련된 인물들(공직자, 공인)에 대한 발언은 ‘실질적 악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받지 않는다. 심지어 그 발언들이 공직자 개인의 고통을 유발하더라도, 공인이 심리적 고통에서 보호받을 권리보다 시민이 개인의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우선한다. 다시말해, 공인에 대한 발언은 아무리 허접하고 저급수준이어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 the People vs Larry Flynt에서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대법원에서의 변론이 끝나고 나온 Falwell 목사와 Flynt의 기자회견 장면이다.

the People vs Larry Flynt

기자: 승소를 장담하십니까?
폴웰: 대법원이 플린트 같이 저속한 인간에게 호의적일리 없습니다.

플린트: 만약 헌법 제 1조가 이런…(나보고 뭐라 부르더라?/ 속물이요…)이런 속물을 보호한다면 당신들 역시 보호 받을 거요. 내가… 최악이니까.

‘래리 플린트 vs 제리 폴웰’ 판결의 핵심이 잘 나타나 있는 장면이다. 말 그대로 ‘평균보다 훨씬 낮은 밑바닥’ 수준인 래리 플린트 같이 ‘저속한’ 인간의 저질 발언까지 헌법이 보호 한다면, 모든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 역시 당연히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미국의 정치인들은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 등에서 쿨타임 돌때 마다 까인다. 정치인들도 이런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보다는 오히려 직접 출현해서 이미지 관리를 하는 편이다.

5. 풍자의 자유

사실 풍자의 자유라는 표현보다는 일반적으로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현의 자유 혹은 언론의 자유가 적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풍자의 자유 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풍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풍자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풍자
1.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2.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

결국 풍자의 핵심은 ‘누군가의 뻘 짓/맘에 안드는 짓을 까고싶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간에 직접적으로 까지는 못/아니 하고 빗대어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대게 그 대상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풍자는 표현의 자유의 최대치이기도 하지만 표현의 자유의 최소한의 범위이기도 하다.

공적인 일에 대하여 모든 시민들이 논리적이며, 교양있고 품위있는 언어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이에 따라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민주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무슨 기준으로 어떤 사람의 발언이 논리적이며 교양있고 품위있는 언어라고 판단 할 수 있을까? 어떤 자의 발언의 내용을 듣기도 전에 표현 방식이 저급하고, 허접하다고 해서 아예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나랏님이 되어서 모자란 백성들이 잘 모르고 떠드는 소리까지 벌을 주어서 되겠습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신분제도가 있던 과거에도 우리 조상들은 민속극이나 탈춤같은 것들로 사회적 풍자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풍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공공의 일에 관한 한 당신은 어떠한 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언로가 막힌 독재국가에서는 최소한 중얼중얼 거릴 자유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6. 주권자의 권리 vs 국민에 대한 모독?


과거 참여정부시절에 농민행사에 참여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계란이 날라왔다.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한 질문하는 기자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발언이다. 주권자인 시민이 대통령을 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은 심지어 욕까지 한다 해도 당신을 처벌하지 않으니 마음놓고 의견을 말해달라는 의미이지, 단순히 씹고뜯고맛보고즐기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 덕분에 임기 내내 단순히 온라인 상에서 네티즌들이 까는 정도를 넘어서 신문과 출판물에서도 각종 풍자가 자주 등장하였으며, 심지어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놓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는 연극까지 직접 공연하기도 하였지만, 참여정부 측에서 명예훼손 운운하면서 법적처벌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의원이 세월호 사건 당시 7시간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더 나아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도 그 도를 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의 위상 추락과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입니다. 가장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권의 이런 발언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혐오감을 주고 국회의 위상도 크게 떨어뜨릴 것입니다.

대통령에게 쌍욕을 시전한 것도 아니고, 업무시간의 행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의원의 발언에 대한 반응이었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국민을 욕하는거고, 국위선양에 해가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얼마전에 인터넷 보수 논객 변희재씨가 자신을 또라이라고 비판한 교수를 모욕 혐의로 고소하였지만,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례가 있었다. 당시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았다.


“변씨와 같이 정치적, 사회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거꾸로 비판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일종의 공인”이며 “다소 경멸적 표현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한다”

당시 네티즌들은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변희재는 국가 공인 또라이라며 조롱하였지만, 이는 사실 앞서 설명한 플린트 vs 폴웰 케이스와 같이 공인에 대한 의사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한 의미있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스스로 모순적이게도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 당시 행적에 대한 유인물을 배포한 죄로 재판에 넘겨진 시민에게는 유죄를 선고하였다.


“대통령도 사인으로서 인격권의 주체가 되어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면서 “한계를 벗어난 표현으로 공직자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된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또 “세월호 부실 대응을 풍자한 것이라는 피고인 측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저속한 표현으로 여성 대통령을 비방했다”고 덧붙였다.

???: 대통령 비판은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대통령도 사람이니까 기분 나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쁜말만 해줘

사실 따지고보면 좀 유명한 일개 키보드 워리어인 변희재씨가 공인으로써 좀 기분나쁜 욕도 감내해야 한다고 하였지만, 여성 대통령에게는 기분나쁜 말은 커녕 ‘얼레리 꼴레리’도 저속한 표현이라는 판결이다. 미 연방방대법원의 판결문을 다시 인용하면서 넘어가자.

확언하건데, 하위의 법에 의하면 타인을 감정적으로 상처입히기 위한 목적의 언의 자유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그러나 공인에 대한 발언의 경우, 명백히 거짓된 언임이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언급된 개인이 입은 감정적인 상처를 근거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허용한다면, 이는 정치풍자 만화가들이나 냉소가들에 대해 고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7. 결론

표현의 자유는 유일한 가치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공공의 일에 관한 한, 그리고 공적인 인물에 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임은 자명하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한 커뮤니티에서 키보드 배틀이 일어 나는 주요 쟁점 3가지를 다시 가져와보자.

1. 고인드립을 허용해도 되는가?
2. 저질 드립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3.악인만이 풍자의 대상이 되는가?

1번과 2번, 고인드립과 저질드립은 사실 같은 맥락이다. 이 두가지는 ‘사인’들에게 행해질 경우 심각한 정신적 피해와 명예의 훼손을 가져 올 수 있기에 지양해야 하는 행동들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일반인들이 아닌 공적인 문제에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있었던 정치인들이라면 저질 드립이라던가, 저속한 표현이라던가 하는 자질구레한 이유를 근거로 금지되어서는 아니된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마지막 3번, 누구는 독재자고 누구는 민주적 대통령이기 때문에 발언의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적절하지 못하다. 공공의 일에 영향을 미치는 공인들에게는 모두 표현의 자유가 광범위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일베충들이 어둠의 노사모라고 불리는 것이 괜히 그런게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 있더라도 일베충들이 본인 사진가지고 온갖 지랄을 해대는 것에 대해 뭐라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게 주권자의 권리라고 믿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베충은 노무현의 유지를 지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박근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드립 모두를 즐기는 편이다. 첫째는, 일단 그 유머 코드가 재미있고 둘째는, 나는 아직 적극적으로 그런 드립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담이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누군가가 대신 해주고 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 때문에 더 좋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베충들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이놈들은 처음에야 노알라(노무현+알라신) 처럼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풍자를 했었지만, 그 짓을 7~8년 동안 앵무새마냥 똑같이 해대는 것에 질려버린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재미가 없다. 위에 노무현 대통령 드립이라고 올린 사진이 ‘야~기분좋다’인건 아무리 찾아봐도 재미있는 패러디물을 찾을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놈들은 할말이 없으면, 노무현노무현노무현노무현노무현노무현 노무노무부들부들하盧? 이것밖에 하는게 없다. 그래도 지들이 허접하고 저급한걸 우찌하겠나 그냥 머리가 나쁘고 센스가 떨어지는 것을… 이건 욕하기 보다 불쌍하다 해줘야하는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허접하고 저급한 짓꺼리를 맘에 안든다고 욕하고, 개소리 싸대지 말라고 욕하고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거 또 멍청한 소리하네 하고 무시를 하거나, 맞대응해서 계몽을 시켜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전자를 추천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상대방의 개소리까지 존중해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입은 뚫려있기에 맘대로 지꺼리는거 까지 막지는 말라는 의미이다.

물론 여기서 아쉬운 것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많은 논쟁과 토론이 있지만, 건설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굉장히 적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이 우리편은 맞고 너네편은 틀리다는 진영논리를 바탕으로 키보트 배틀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결론은 요놈은 종북좌빨 홍어 저놈은경북괴 통구이로 끝나 버린다.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고,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는 애국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한 국민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조기 앞에서 조국에 대한 충성을 다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미합중국을 수호하는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시절 연설이다. 미국인들은 어떤 정책을 지지하든 애국자가 되는데 우리는 왜 벌레가 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The People vs Larry Flynt에 나온 변호사의 말을 인용하며 끝내고자 한다.

This country is founded, at least in part on the firm belief that unpopular speech is vital to the health of our nation

미국은 소수 의견도, 조국을 건강하게 만드는데 필수적이라는 강한 신념위에 건국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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