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모든 유행처럼, 이 역시 지나갔다. 그리고 다른 모든 유행처럼 이는 대부분의 여성들의 실제 삶, 경험과 완전하게 유리된 경박하기 짝이 없는 외관상의 겉핥기 식 변화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첫 번째 여성대통령 대신, 이제 미국인들은 성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대장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성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부통령이 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백인 여성 중 53%가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고, 심지어 이들 중 대부분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주류 백인 여성들이 어떻게 첫 번째 여성대통령의 탄생을 거부하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릴 수 있었을까? 그것도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제 미국 여성들은 지난 40년간 이룩한 많은 것을 다시 잃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로부터 자극 받은 대중들은 이제 다시 페미니스트를 조롱하기 시작했고, 미국 유권자들은 여성혐오로 가득한 정치적 실패에 처했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주류 페미니즘 그 자체에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주류 페미니즘과 대부분의 미국 여성의 일상적 현실 사이의 격차는 점점 확대되었다. 페미니스트는 마치 거의 중세시대의 페미니스트들처럼, 가난한 여성, 시골의 여성, 일하는 여성 다시 말해,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아닌 일반 여성들의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 이후 이 격차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행위예술가이자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Amanda Palmer는 트럼프의 재임기간은 예술가들에게 진짜 진짜 진짜로 좋을 것이라 선언했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를 연구해 본 결과 저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닿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시간이군’” 그녀는 호주로 이민 간다고 밝힌 후에 이와 같이 즐거워했다. 10대 들의 스타이자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Lena Dunham은 원치 않은 임신의 결과 낙태를 선택해야만 했던 많은 여성들의 감정적, 육체적 고통을 기만하면서 엘리트 페미니스트의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Dunham은 팟케스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직 낙태를 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Lindy West, Jessica Valenti, Sady Doyle과 같은 페미니즘 강연자들은 클린턴의 패배는 오로지 미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인종주의와 여성혐오의 결과일 뿐이라 주장하며 지겨울 정도로 똑같은 남 탓만 계속했다. “이 나라의 절반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군요. 사람들을 피부색으로 차별하고, 여성을 잉여인간으로 보며, 백인 남성이 온 세상의 중심인 바로 그런 시대요.” 대선 직후 Rebecca Traister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이었다. 이런 주장은 트럼프를 지지한 2천 9백만명 이상의 여성의 의견을 너무나 자기 편한대로 무시하는 것이었다. 이 여성들은 어릿광대 같은 막말을 쏟아내는 엔터테이너가 가장 성숙한 여성 정치인보다 더 훌륭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이라 느낀 사람들이었다.
이 문제의 근원은 페미니즘이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포기했다는데 있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전통적으로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미국 사회의 구조가 빈곤층 여성 및 유색인종에 대한 착취를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여성 해방은 경쟁, 탐욕 권력에 기반한 구 체제의 전복을 의미해야 했다.
진정한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즘 정신을 되찾기 위해서는, 주류 페미니스트를 좀더 온건한 뉘앙스를 띄는 “친-여성”주의자라 불러야 한다(혹은 더 과격한 뉘앙스를 띄는 여성우월주의자). 이 용어가 꽤 적절하다 생각하는데, 주류 페미니스트들은 현상 유지에 기여하며, 사회 시스템에 의한 동등한 억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친-여성주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스스로 강해지기(Self-Empowerment)인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이 스스로 강해지기라는 용어는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져야하는 개인의 의무를 설명하기 위해 1980년대에 우파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이건과 대처 시대의 많은 정치적 수사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강해지기란 용어는 사회적 연대의 붕괴로 나타난 결과에 대한 그럴듯한 도피처가 되었으며, 여성과 소수인종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실패를 야기하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정당한 변명으로 작용하였다. 주류 정치가들은 레이건주의 사회적 신화에 발맞추어 변해갔으며 페미니즘도 마찬가지였다. 동등한 보수와 육아 휴직 같은 직장문제는 자기관리와 성공 같은 가치에 뒷전으로 몰렸다. 1992년 2차 페미니즘의 아이콘이었던 Gloria Steinem의 자존감에 관련된 저서 Revolution from Within는 이와 같은 변화의 신호였다. 오프라 윈프리는 본인 스스로의 스토리에 기반하여 이른바 여성의 자기 스스로 성취해야 한다는 복음과 같은 이야기를 설파하며 페미니스트의 정치적 불만의 목소리를 개인의 문제로 바꿔버리는데 성공했다. FACEBOOK의 COO였던 셰릴 샌드버그는 Lean In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면서 현 세대의 여성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일종의 힐링 메시지를 던졌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그 자리를 유지해라.
‘스스로 강해지기’의 영향 아래서, 페미니스트 운동의 성취는 포츈 500대 기업에 여성 임원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혹은 아이비리그 명문대학, MBA에 여성들이 얼마나 많이 입학하는지 같은 지표로 측정되기 시작했다. 주류 페미니스트 담론의 대부분 역시 돈과 일을 통해 ‘성취’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 친-여성 파워 엘리트는 미국인들 삶의 잔인한 불평등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내 몫인 절반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만 묻고 있다.
마리사 메이어가 야후를 폐업위기로 몰아간 것은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이제 메이어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비유로 이용된다. 그녀에 따르면 구글에 있을 때, 그녀는 잠을 회사 책상 밑에서 잤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CEO가 되자, 직원들의 재택근무를 금지시켜버렸다. 회사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는데, 이로 인해 워킹맘들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기 힘들어졌다. 이 수도원 같은, 기업가적인 세계관에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권력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이다. 또는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이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할까?’에 대한 질문도 해야한다. 본인의 성공과 이해를 위해 일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바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돈과 권력을 획득하는 것은 명백하게 페미니스트의 목표와 부합되지 않기도 한다.
여기서 어떻게 트럼프가 백인 여성 중 대다수의 표를 얻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부분적인 해답이 존재한다. 옳든 옳지않았든,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 연성들은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한 것이다. 그리고 주류 페미니스트들의 논리하에서는 트럼프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쉽게 페미니스트적인 행동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한 트럼프의 여성지지자는 인터뷰에서 “저는 제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을 살 것입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한다고 강요하면 안됩니다. 여성들 스스로가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생각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당연하지만, 또 진부하기까지 한 이 논리는 고착화된 주류 페미니즘의 도덕적 상상력의 한계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동의없이 몸을 더듬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고, 월스트리트와 실리콘 벨리의 고위직을 더 많은 여성들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로 평가받는다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는 소수의 이상주의자가 무엇인가를 시끄럽게 주장하고 싸우고 나서야 마지못해 진전을 하게 된다.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부분적으로 소수의 여성 참정권론자들이 투옥과 고문을 겪어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페미니즘의 전성기 동안, 대부분 여성들의 꿈은 좋은 아내와 어머니로 한정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급진적인 사상가들, 개혁가들은 불공정한 임금과 직장에서의 성적 학대 그리고 낙태 금지에 대하여 맞서 싸웠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더 많은 여성들을 이사진에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나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측정 가능한 방법으로 일과 삶의 방식을 개선해야한다. 어떤 이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후, 이에 대해 여성들이 과분할 정도로 큰 꿈을 꾸어서 패배한 것이라 좌절했지만 사실, 여성이 패배한 것은 정 반대로 너무 작은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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