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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취임식의 비극적인 해프닝

category # 역 사 2017. 1. 20.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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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취임식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1800년대 이래 끝이 좋지 않았던 3건의 대통령 취임식을 떠올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이 화려하고 왁자지껄했던 대통령의 취임식을 되돌아 볼때 흔히, 청중을 휘어잡는 연설과 장대한 퍼래이드와 같은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난 다른 커다란 이벤트처럼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19세기를 되돌아 보면 취임식에서 혼란과 재난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예를들어 1861년 취임식을 앞두고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암살이 있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당시 정세 때문에 이런 소문은 꽤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서, 보안문제를 고려하여 링컨은 볼티모어에서 머물다가 특별야간열차를 타고 취임식에 참석하였다. 이 일로 인해 당시 언론에서는 링컨의 용기에 대한 의구심을 표현했었다.


lincoln inaugura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1861년 링컨의 첫번째 취임식


4년후 링컨의 보좌진들은 또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의 새로운 부통령인 앤드류 존슨이 술에 만취된 상태로 연설을 한 것이다. 존슨이 왜 술해 취해있었는지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병에 걸린 존슨이 치료를 받기 위해 의사가 권한 알코올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프닝들은 1829년과 41년 그리고 57년에 있었던 매우매우 불행했던 사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백악관이 성난 군중들에게 점거당하고, 한명의 대통령이 죽었으며 36명이 병에 걸려 희생되었다. 


첫번째 유명한 사고는 존 퀸시 애덤스를 간신히 꺾고 당선된 앤드류 잭슨의 1829년 대통령 취임식에 있었다.


잭슨은 대통령 의사당 밖에서 취임 선서식을 가진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그 당시 치고는 엄청난 규모였던 20,000여명의 군중이 새로운 대통령을 구경하기 위해 집결해 있었다.


당시 백악관을 점거한 군중들





그리고 후대에 길이 남을 만할 일이 일어났다. 훗날 그루버 클리블랜드 대통령 시절까지 이어졌던 전통에 따라 대규모 군중들이 백악관으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군중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술 취한 폭도로 변하였고 백악관 내부의 집기들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잭슨 대통령은 창문 혹은 쪽문을 통해서 간신히 백악관을 탈출하였고, 무료로 술을 뿌려서 간신히 폭주하는 군중들을 백악관 앞마당으로 끌어 낼수 있었다. 상황을 더 나쁘게 했던 것은, 훗날 페티코트 사건(Petticoat Affair)라고 불리우는 내각 부인들간의 불화가 취임무도회에서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petticoat affai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페티코트 사건으로 인해 잭슨 내각의 전원이 사임하였다.


가장 유명한, 물론 가장 나쁜 의미로 유명한 취임식은 1841년의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의 취임식이었다. 해리슨은 취임 연설중에 살해당했다.


68세의 연로한 해리슨 대통령은 비가오는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던 취임식 당일, 2시간이 넘는 야외 연설을 계획하였다. 해리슨은 코트와 모자도 쓰지 않은채 열정적으로 연설을 하였지만,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당시 참석자들은 고대 로마에 대해 떠들던 그의 연설에서 어떠한 감명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연설 직후 젖은 옷을 그대로 입은채로 대통령은 퍼레이드와 3개의 무도회에 참석하였고 술까지 마셨다고 한다. 취임식 후 한달도 안되어서 해리슨은 폐렴과 늑막염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원래 폐렴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취임식에서 걸린 감기가 폐렴으로 악화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모두들 취임식에서의 오바가 그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1857년 제임스 뷰케넌의 불운한 취임식이었다. 


뷰케넌의 불운한 운명은 1857년에 있었던 국립호텔질병사건과 관련이 있었는데 취임식 전후로 3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워싱턴의 가장 큰 호텔에서 열린 행사의 참석자들이 행사 직후 부터 길게는 2년이 이르는 시간동안 사망에 이르렀다. 


뷰케넌 대통령은 병에 2번이나 걸렸지만 간신히 회복하였다. 취임식 전에도 한번 아팠고 직후에도 병에 걸렸다. 물론 그는 당시 모두 호텔에 머물렀었다.


36명의 사망자들은 모두 호텔에서 열렸던 공식 뒷풀이 일정의 참석자였고 3명의 의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뷰케넌 대통령 역시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다행이도 회복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대통령직의 첫 1주일은 병상에서 보내야했지만.


전문가들은 당시 부적절했던 호텔의 하수처리시설을 비롯한 위생상태가 문제였을 것이라 추정한다. 당시 환자들은 모두 호텔의 음식을 먹었지만, 호텔의 바에 있었던 손님들에겐 증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newseum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문제의 호텔은 1920년에 철거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the Newseum이라는 박물관 겸 관광시설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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