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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Q-9  ReaperMQ-9 Reaper, MQ-1 Predator의 공격형 업그레이드 버전


새로운 전쟁

2001년 10월 7일 오후, 아프간전 첫날, 무인항공기 조종사를 위해 디자인된 의자에 앉아 Scott Swanson이라는 공군 파일럿이 전쟁사의 한페이지를 새로 작성하였다. 그는 역사에서 유래 없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적을 사살한 것이다. 

역사가 쓰여지는 바로 그 순간, Swanson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버지니아주 랭리에 있는 CIA 본부의 주차장에 위치한 트레일러에 앉아서 6,900마일 떨어진 Kandahar 상공에 있는 프레데터를 원격으로 조종하고있었다. 하지만 그의 장비는 거의가 급조된 것들이었다. 몇 기 전력화 되지도 않았던 프레데터는 평소보다 250파운드 이상 더 무거웠고, 위성신호는 캘리포니아에 있던 엔지니어들이 필사적으로 패치를 했지만 전력문제로 인해서 수시로 끊어졌다.

발사명령이 떨어지자, Swanson은 조이스틱의 발사버튼을 눌렀다. 1초정도 후 헬파이어 미사일이 프레데터 날개에서 알루미늄 레일을 미끄러져 떨어졌고 아프간의 밤하늘을 갈랐다. 

Swanson의 목표는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Mullah Omar가 타고있을 것이라 파악된 픽업트럭이었다. 보디가드로 추정되는 2명의 신원미상 남자가 죽었다. 미군 드론이 처음으로 전투 중에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또한 드론이 처음으로 인간을 죽인 것이다. 

Scott SwansonScott Swanson, 15년전 처음으로 드론공격을 통해 적을 사살한 파일럿

14년이 지나면서 수천명의 프레데터 파일럿과 드론은 미군의 핵심이 되었다. 어느때라도 수십명의 파일럿은 미국 전역에서 어두컴컴한 트레일러 안에 앉아서, 아프간, 이라크, 시리아, 파키스탄 혹은 소말리아 상공에 떠있는 드론에서 보내온 환한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서 적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8월부터 2015년 8월 사이 단 한 개의 프레데터 비행단(네바다에 주둔한 432 원정 항공대)이 4300번 출격하여 1000개의 폭탄을 ISIS에게 투하하였다. 이제 백악관은 전투부대를 파병하지 않고도 해외분쟁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드론이 미국의 해외정책을 변화시킨 것이다.

실제로, 안보전략에 무인기가 너무나 긍정적으로 작용했기에, 이 전쟁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팬타곤의 고위인사들은 마치 오래전부터 무인기를 꿈꿔왔던 것처럼 열광하였다. 이들은 지난 수십년동안 체계적으로 국방전략을 세우고 군수계약을 맺었다. M1 에이브람스, 아파치 공격헬기, F-35 스텔스기와 같은 미군의 주요 무기들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획득되었다.

그러나 무인기는 조금 달랐다. 수천마일 떨어진 곳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프레데터는 어느 멀지 않은 미래에 파일럿이 트레일러의 조이스틱을 움직여서 전쟁을 수행할 것 같다는 정밀한 예측에 의해서 개발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당시 대부분의 군사 기획자들은 프레데터를 기술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원격전쟁의 아버지임에도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프레데터 프로그램의 엔지니어와 운영팀은 펜타곤의 무기구매팀의 조사도 면제받고 엄청난 압박을 받으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2000년 알카에다가 감행한 미 구축함 USS Cole에 폭탄테러보다 더 큰 규모의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가 포착되었고 미군은 그 이전에 오사마 빈 라덴을 처리하길 원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몇 달에 불과했다. 획기적인 일련의 기술적 발전을 통하여, 그들은 2000년에서 2001년 사이 불과 몇 달 동안 원격조종이 가능한 프레데터에 공격능력을 부여하는데 거의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공격형 프레데터는 완성되지 못했다. 2001년 9월 11일 전, 그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것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그들이 얼마나 성공에 가까웠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Scott Swanson

미국의 첫번째 공격형 무인기의 파일럿은 어린시절부터 비행에 심취했다. 미네소타주 Minnetonka에서 자란 그는 Civil Air Patrol에 13살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살에 민간 비행기 조종 자격증을 획득하였고 미네소타 대학 재학 중 미 공군 ROTC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1차 걸프전때는 UH-1 Iroquois ‘휴이’ 헬리콥터를 조종하였으며 이후 Swanson은 민감하거나 비밀임무를 담당하는 특수임무 파일럿이 되었다. 그리고 모기지에 있을 때 그는 새로운 미 공군 비행기체의 테스트 파일럿에 참여하였다.

1997년 2년동안 아이슬란드에서 있었던 비밀임무를 마치고 다음 보직에 대해 고민하던 Swanson은 네바다주 Indian Springs 기지의 제 11정찰비행단에서 자격을 갖춘 파일럿을 찾고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2년간의 계약 내용은 무인항공기 프레데터라 불리는 미 공군의 최신 기체를 시험하는 것이었다.

‘주간 항공’의 애독자로써 Swanson은 프레데터에 대해 이미 알고있었다. General Atomics 항공시스템이라는 캘리포니아의 특이한 스타트업에서 수작업으로 조립한 프레데터는 이미 발칸반도에서 정찰임무에 투입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방부 당국자들에게 그리 사랑받는 무기는 아니었다. 무장도 불가능했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비행도 불가능하고 조종시스템의 반경 500마일 이내에서만 작전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1997년 국방부의 평가에 의하면 작전중 12퍼센트에서 기계적 결함을 일으켰다. 

대부분의 공군 파일럿들에겐 무인조종기를 운영한다는 생각은 그리 환영 받지 못했다. 파일럿은 비행기에 올라타야한다. 그러나 Swanson은 항상 신기술과 신무기에 관심이 많았다. 특수 임무 파일럿으로서 그는 프레데터의 감시능력을 즉시 파악했다. “감이 딱 왔던거죠.” 

그래서 Swanson은 11정찰비행단에 들어갔다.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는 헝가리의 Taszr로 배치되었고, 보스니아에 대한 정찰 비행을 4개월동안 수행하였다. 프레데터와 함께할 커리어의 첫 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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