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 사촌관계인 Bob Delamar와 Jeremy Johnson이 BitTorrent의 공동 CEO로 취임하였다. Delamar는 수엽이 덥수룩한 일빠 캐나다인이었으며, Johnson은 샌디에고 출신의 네트워크 엔지니어였다. 비정상적인 재정적 조치 덕분에 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한 4명의 대주주를 대표하여, 이들은 BitTorrent를 “차세대 Netflix”로 변모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BitTorrent는 브랜드를 설정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사용자들이 토렌트를 영화를 불법으로 공유하는데 사용한 것이다. BitTorrent는 문화계의 Napster가 되었다. BitTorrent 통신규약이 오픈소스로 공개되었기에, BitTorrent는 이러한 불법공유를 저지할 수 없었다. 12년동안 BitTorrent의 투자자들과 운영진, 창립자들은 소프트웨어 유료화부터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까지 수많은 수익화 전략을 수립하였다. BitTorrent를 불법적인 컨텐츠 공유를 위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어쨌거나 BitTorrent 자체는 엄청나게 뛰어난 도구였다. 그리고 분명히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방법이 어딘가 있을 것 같았다.
BitTorrent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매달 1억 7천만명이 이 프로토콜을 사용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서버에 업데이트를 배포하기 위해 토렌트를 사용하고. 플로리다 주립대학은 대형 과학 데이터 세트를 연구원들에게 배포하기 위해 이를 사용했으며, 블리자드는 BitTorrent를 통해 World of Warcraft를 다운로드할 수 있게 했다. 회사 웹사이트에는 다음 사항이 매우 자랑스럽게 기재되어 있다. BitTorrent 프로토콜이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40%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기술을 비즈니스로 전환하는 것은 어려웠다. 지난 봄까지 이미 BitTorrent는 미디어 회사로 변모하기 위한 시도에서 2번이나 실패하였다. BitTorrent Entertainment Network가 2007년 출범했었고, 음악과 영화를 팔았지만 고작 1년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그리고 2013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BitTorrent Bundle도 있었다. 아티스트가 적은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저작물을 배포하는 일종의 아이튠즈와 아마존의 경쟁 제품이었다. 2014년에는 스스로 오리지널 컨텐츠를 제작하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Children of Machine이라는 SF였다. 그러나 그 다음해 BitTorrent는 이 계획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스타트업은 출발부터 운이 좋은 경우가 있다. 타이밍과 기술 혹은 창업자의 운이 좋다면, 어떤 기업들은 페이스북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스타트업들은 빠르게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이 실패는 차라리 행운일 수 있다. 즉각적이고 명확하게 결론이 나오니까. 어떤 스타트업은 아이디어와 개발팀의 메리트 덕분에 수년간 혹은 수십년간 꾸역꾸역 투자를 받고, 계속해서 아이디어와 고객 혹은 파트너십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이 스타트업의 투자자들은 처음에는 인내하지만 곧 지치고, 떠나가버린다. 운영진도 계속 바뀌고 결국엔 창업자도 떠나간다. 혹은 회사가 결국엔 그 가치를 드러낼 것이라 믿으며 희망을 부여잡는다. 이런 기업을 좀비 스타트업이라 부른다.
이게 바로 BitTorrent가 처한 상황이었다. 토렌트는 12년동안이나 비즈니스 기회를 계속 찾았다. 그리고 작년 Delamar와 Johnson이 이 상황을 정리할 계획을 가지고 온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시한번 실패한 계획에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었고, 결국 회사를 붕괴로 몰고갔다.
Backchannel의 주간 Follow-up 기사를 보다가 이 이야기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BitTorrent가 계획했던 오리지널 시리즈 Children of Machine에 대한 후속보도를 찾아보고자 하였지만 회사는 답이 없었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했다.
BitTorrent는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을 꺼렸다. 임직원들은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지만, 전현직 직원들과 투자자, BitTorrent의 계획에 참여했던 아티스트들과 접촉함으로써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투자자와 창업자들 사이의 불협화음에 대한 교훈이 담겨있다. 그리고 성공에도 실패하고, 실패하는 것도 실패해버린 극적이면서, 이상한 한 벤처회사의 이야기이다.
Cohen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초기 투자자들에게도 본인의 상태를 알렸다. 초기 투자설명회에서 였다. 한 투자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사람들을 만나서 처음 하는 말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있어요’ 였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Cohen은 사람들과 악수도 잘 하지 않았으며, 신발을 신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과 사적인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았다.
코헨은 20대 중반 닷컴 기업에서 일하면서 9개월동안 자신의 거실에 틀어박혀 코드를 써 내려가면서 프로그래머들에게 주어졌던 퍼즐을 푸는데 집착하였다. 저축한 돈을 다 썼고 나중에는 신용카드 빛으로 생활을 이어 나갔다. 인터넷이 개발되었을 때부터 여전히 미제로 남겨져 있던 퍼즐. 대용량의 파일을 전송하는 방법을 본인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픈소스 프로토콜인 BitTorrent였다.
2004년 코헨은 동생인 로스 코헨과 야후와 골드만삭스의 초짜 투자자, 그리고 야후와 파트너쉽을 맺고 BitTorrent 프로토콜을 가지고 사업기회를 찾으러 했다. Doll Capital Management로부터 875만달러의 투자금을 받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초기 비즈니스 계획은 컨텐츠 제작자가 대규모 트래픽을 필요로 하는 컨텐츠를 팔 수 있도록 해주는 eBay와 같은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광고를 통해 혹은 제작자에게 요금을 부과함으로써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다. 그리고 벤처회사 Accel이 이 계획에 참여했다.
BitTorrent는 처음부터 인사문제가 있었다. 기술분야를 담당했던 로스 코헨이 금방 떠나버렸고, 2007년 코헨은 새로 신설한 Chief of Scientist으로 직함을 변경하면서 외부인에게 CEO자리를 넘겼다. 그리고 새로운 CEO도 금방 떠나면서 2008년 기술 책임자였던 Eric Klinker가 CEO로 취임하였다. Klinker는 훌륭한 인재였는데, 회사를 운영하는데도 능했으며, 코헨의 존경을 받을 만할 기술적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원래의 사업계획은 시작도 못해보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대안을 찾는데 몇 년이 지나갔다. 2008년 3번째 투자를 받은 BitTorrent는 이 계획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업계획 재편에 동의하였다. 1700만달러를 투자자들에게 반환하고 단 700만달러만을 다시 투자 받았다. 이는 회사에 문제가 있다는 강력한 증거였다. Navin도 떠났다. 하지만 BitTorrent는 계속해서 사업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BitTorrent는 샌프란시스코의 본사에서 새로운 사업계획을 구상하고, 직원들을 고용했으며, 실패도 경험했다. 그리고 2010년 TechCrunch에서 “흠… 아직도 BitTorrent가 살아있나?”라는 기사를 내기까지 이르렀다.
BitTorrent의 마지막 이야기는 2015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회사의 많은 임원들과 이사들이 이제는 지치고 말았다. 이들은 회사의 진로에 대해 동의하지 못했고,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BitTorrent가 가지고 있는 기술에 집중하여 사람들의 구미가 당길 제품들을 만들려고 했다. BitTorrent는 Sync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일종의 분산화 된 Dropbox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변모시키고자 했다. BitTorrent의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컨텐츠를 뿌리는 것이었다. 선택과 집중이 없었기에, 회사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해 초 BitTorrent는 직원 150명중 50명을 해고했다.
그리고 Accel의 Ping Li도 회사에서 나가기로 결심했다. Ping Li는 2006년 BitTorrent가 총 2천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던 2006년부터 투자자로 회사에 참여했었다. 회사의 엄청난 잠재력에 흥분했지만, 10년이 지났음에도 벤처회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BitTorrent에서 더 이상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Li는 “10년이 지났는데 이제 어떠한 계획도 그리 흥미롭지는 않네요. 하고싶은 것을 하게 놔두는 것이 도와주는 길 같습니다.”라 언급하였다. 페이스북과 Dropbox의 초기 투자자였던 벤처투자계의 큰 손 Accel도 10여년 동안 BitTorrent를 어떻게든 감싸려 노력해왔다.
그리고 또 다른 투자자들이 참여를 타진해왔다. 투자자 중 한명인 Jeremy Johnson이 Klinker와 인연이 있었는데 이들은 90년대 후반 Excite@home에서 함께 일하고, Accel이 투자한 스타트업에 참여했었다. 덕분에 그해 가을 투자자들은 Accel의 BitTorrent 지분을 인수하였다.
벤처계의 관행에서 이는 그리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Johnson과 그의 사촌은 Robert Delamar는 다른 2명과 함께 DJS Acquisitions라는 투자회사를 창립하였다. DJS는 당장 돈은 없었지만 약속어음 1000만달러를 발행하여 Accel과 DAG(2008년부터 BitTorrent에 투자한 또 다른 투자자)의 회사 지분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DJS는 이 어음을 1년 안에 지불할 계획이었다.
투자회사가 약속어음과 주식을 교환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Accel이 왜 이에 동의하였을까? DJS는 BitTorrent를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분명하게 밝혔다. 물론, 이전에도 실패하기는 했지만, DJS는 새로운 열정과, 인물과 함께 계획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외에 Accel에 다른 옵션도 없어 보이기는 했다. 어떤 내부자들은 코헨이 다시 회사의 지분을 인수하려 한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Accel과 Li는 어쨌거나 DJS의 제안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 자기 자본을 하나도 투자하지 않았음에도, DJS팀은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Johonson과 Delamar가 Ping과 DAG 몫의 이사회 자리를 물려받아 이사회의 총 5개 의석 중 2개를 확보하였다. BitTorrent의 내부사정에 정통한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DJS가 BitTorrent의 우선주의 지분 50%이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DJS가 BitTorrent를 장악한 것이었다.
4명의 DJS팀원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Silver Spring Networks의 공동 창립자인 Johnson과 Raj Vaswani는 엔지니어 출신이고, 다른 두 명은 밴쿠버에서 브리티쉬 콜롬비아의 원유를 정제하는 Pacific Future energy라는 스타트업을 운영했었다. Delamar는 변호사, Samer Slameh는 집행위원장이었다.
DJS가 지분을 취득하고 몇 달 만에 Klinker는 CEO에서 사임했다. 이사회는 Delamar와 Johnson을 공동 CEO로 임명하며 BitTorrent를 할리우드의 거인으로 만들 계획을 추진하였다. 6월에 BitTorrent는 자사의 Sync제품을 Resilio라는 독립회사로 분사 시키면서 미디어&엔터프라이즈 사업과 결별했다.
한편, Johnson과 Delamar는 본인들의 계획을 진행시켜 나갔다. 그런데 Delamar는 LA에 사무실을 열어서, 밴쿠버에서 LA로 통근하였고, Johnson은 본인의 샌디에고 집 근처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누구도 샌프란시스코의 본사에 정기적으로 출근하지 않았다.)
1월에서 6월사이에 26%가 넘게 인원을 늘렸는데 대부분은 마케팅과 세일즈 부서에 배치되었다. 동시에 자기 사람들도 데려와서 고위직에 앉혔는데, 그 중 일부는 Pacific Future Energy에 이중으로 고용되어 있었다. 현재 PFE의 CEO겸 이사회의장을 맡고 있는 Salameh는 BitTorrent에서 컨설팅 비용으로 총 15만4천달러를 받았다. PFE의 수석 고문으로 이름을 올려놓았던 Delamar는 PFE의 최고 투자책임자였던 Jeremy Friesen을 기업 개발 담당 수석 부사장으로 고용했다. 그리고 Friesen은 양쪽 회사 모두에서 동시에 일했다.
이 두사람은 할리우드에서 대대적인 홍보작업에 착수했다. 물론 엄청난 비용이 들었는데, 그 내용은 BitTorrent가 영화 및 음악의 유통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창작자들이 유통과정을 통제하고 잠재적인 고객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했다. BitTorrent는 Sundance Institute’s Artist Services Program의 관리자인 Missy Laney를 고용하여 영화 제자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냈으며, 아티스트들이 본인의 작업물을 팬들에게 직접 보내줄 수 있도록 하는 Torrent Now라는 플랫폼을 다시 런칭하였다. CNN앵커의 아들을 고용하여 온라인 뉴스 서비스도 시작하였고 Discovery Fund를 시작하여 25명의 예술가들에게 최대 10만달러의 기금을 지원하였다. 심지어 여성 Motocross 트럭 운전자를 섭외하여 트럭에 로고를 그리는 대신 5만달러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운전자는 Johnson의 친구라고 한다.
BitTorrent의 광고 수익이 분명히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Delamar는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BitTorrent가 작품들을 엄청난 잠재 고객에게 소개하고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Delamar는 X-Men의 제작자인 Tom DeSanto의 다음 프로젝트를 BitTorrent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10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당신과 함께 전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DeSanto 본인은 BitTorrent와의 어떤 파트너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여름이 끝나가면서, BitTorrent의 새로운 전략이 가망이 없다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졌다. 순익이 곤두박질 치는데도 회사 보유 현금의 1/3이 넘는 돈을 날려버렸다. 이사회에 보고된 문건에 따르면 BitTorrent는 수년 동안 3천3백만달러의 현금보유액을 유지했으나, 작년 7월에는 1천490만 달러로 급감하였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800만달러로 줄어들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BitTorrent는 작년 1월부터 6월까지 무려 천만달러를 써버린 것이다.
이러한 혼란가운데서도 코헨은 새로운 제품의 개발에 몰두하느라 회사의 나머지 사람들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코헨의 지분은 너무 희석되어 발언권도 거의 없었다. DJS는 회사 지분의 거의 70%를 통제했으며, 회사 내부에도 코헨의 사람들이 없었다. 어쨌거나 코헨은 지난 몇 년 동안,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을 위한 BitTorrent Live를 개발하는데 몰두했었다. 그리고 최근에 베타버전을 시장에 내놓는데 성공했다.
2016년 10월 DJS의 약속어음의 결재일이 돌아왔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DJS는 돈을 지불할 수 없었다. 또 들리는 바에 따르면, 아직 남아있던 투자회사 DCM의 David Chao가 대신 어음을 결재하고 DJS가 보유하던 주식을 가져왔다고 한다. DCM은 이사회의 의석 3개를 가져왔고 두명의 공동대표를 해고했다.
지금은 회사의 최고 재무 책임자인 Dipak Joshi가 임시 CEO를 맡고있다. Delamar와 Johnson은 모두 회사를 떠났다. BitTorrent는 LA 작업 스튜디오와 샌디에고의 사무실을 폐쇄하고 많은 직원들을 해고했다. 8월에는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을 주던 Discovery Fund는 모든 신청자들에게 프로그램이 중단되었다는 이메일을 보냈다.
BitTorrent에 관련된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코헨의 BitTorrent는 분명히 엄청난 발명품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열악한 네트워크에서도 이렇게 엄청난 데이터를 전송하는 프로토콜은 Bram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마도 BitTorrent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기술은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도 아니다. 기술은 그냥 무지하게 좋은 기술일 뿐이다. Vint Cerf는 TCP/IP Protocol이라는 인터넷 시대를 가능케 했던 기술을 개발했지만 구글과 같은 거대한 기업을 건설하지는 못했다.(물론 미국의 국립기술 훈장은 얻었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여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겠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실패할 것이다.
다시, 실리콘 밸리에 넘치는 다른 좀비 스타트업 기업처럼, BitTorrent는 아직 죽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난 크리스마스 연휴 바로 직전 코헨의 BitTorrent Live 앱이 앱스토어에 런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