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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류 탄생에 비견되는 변화의 순간에 서있다. – Vernor Vinge

 


여기에 서 있는 기분은 어떠할까?

 

매우 강렬한 기분을 느끼겠지만, 만약 시간 그래프 위에 서있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몰라야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느끼는 그래프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곧 다가올 아주 먼 미래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1750년으로 돌아가본다면 어떠할까? 전기도 없고, 장거리 통신이라고는 소리를 지르거나 봉화를 날리는 것을 의미하며, 탈것은 건초로 운용되는 시기. 그곳에 도착해서 아무나 잡고 다시 2017년으로 데려와 보자. 그리고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면 꽤나 흥미로울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강철마차와 대양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것,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경기를 실시간으로 본다거나, 10년전에 있었던 뮤지컬 영상을 대형화면으로 보는 것, 그리고 직사각형의 조그만 마법상자로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 혹은 인터넷, 우주정거장, 핵발전소, 핵무기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에 대한 반응은 어떠할까?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우스울까?

 

그에게 이런 경험은 단순한 충격정도가 아닐 것이다. 아마 충격 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점은, 만약 그를 다시 1750년으로 돌려보냈을 때, 그의 반응을 지켜보며 재미를 느꼈던 우리를 질투하여 그 역시 1500년으로 날라가 아무나 잡고 1750년으로 데려왔을 때, 1500년의 사람은 1750년의 사람이 2017년에 왔을 때처럼 까무라칠듯이 충격을 받을까? 비록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그의 세계관에 큰 충격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1750년의 사람이 2017년에 왔을 때만큼은 아닐 것이다. 이와 비슷한 충격을 느끼게 하려면, 아마도 최초의 농업혁명이 일어나고 이제 막 문명이 발전하기 시작한 시대의 사람을 1750년대로 데리고 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원전 1,200년전의 사람이 똑같이 질투심을 느끼고 그 이전 시대로 돌아가 같은 충격을 주려면 아마 불과 언어가 처음 발견된 10만년전쯤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렇듯 인류의 발전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인류가 후대의 모습을 보고 놀라 까무라칠 정도의 발전을 이루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10만년전의 원시인이 까무라칠 정도의 변화가 생기려면 기원전 12,000년경 문명이 발전할 때 까지 기다려야했다면 12,000년전 이집트인들이 놀라 자빠지려면 산업혁명이 일어난 1750년대까지 기다려야했다. 그리고 산업혁명기의 영국인들이 상상도 못할 충격을 받는 시점은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오늘날 정도가 아닐까?

 

이렇게 인류의 기술발전이 점점 더 빨라지는 현상은 미래학자 Ray Kurzweil이 수확 가속의 법칙(The Law of Accelerating Return)이라 부르는 패턴이다. 이 현상은 더 발전된 사회가 덜 발전된 사회보다 더 빨리 진보를 달성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19세기 인류가 15세기의 인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15세기보다 더 빠른 진보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좀 더 작은 단위에서도 일어난다. 영화 백투더 퓨처를 생각해보자. 1985년에 나온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1955년으로 시간여행을 한다. 그리고 무설탕 펩시라던지, 일렉트릭 기타의 부재 등으로 인해 55년과 85년의 엄청난 차이를 느낀다. 하지만 만약 백투더 퓨처2015년 만들어졌고 1985년으로 돌아가는 설정이었다면, 우리는 원래 영화보다 더 큰 차이를 느낄지도 모른다. 아마 90년대 후반에 태어났을 McFly역 주인공은 PC와 인터넷 그리고 휴대폰이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원래 영화에서 보다 컬쳐쇼크를 더 크게 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확 가속의 법칙이 말하는 바이다. 1985년에서 2015년 사이에 인류의 발전 속도는 1955년에서 1985년보다 훨씬 빨랐다. 전자가 더 발전된 사회였기 때문에, 그 이전 30년보다 더 빠른 속도의 발전을 보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발전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고 변화의 크기도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Kurzweil20세기 전체에 걸쳐 일어났던 발전이 1980년에서 2000년사이에 일어난 발전이랑 비슷할 것이라 추측한다. , 1980년대의 발전속도는 20세기의 발전속도보다 5배 빠른 것이다. Kurzweil은 또 20세기 전체의 발전은 2000년에서 2014년에 일어난 발전과 비슷하며, 2014년에서 20217년동안 일어난 발전의 양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수십년이 지나면, 1년만에 20세기 전체의 발전의 몇 배에 이르는 발전이 있을 것이다. 수확 가속의 법칙에 따르면 21세기에 인류는 20세기에 달성했던 발전량의 1000배에 이르는 발전을 이룩할 것이라 예측한다.

 

만약 Kurzweil과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옳다면 2030년에는 1975년의 사람들이 2015년으로 넘어온 것과 같은 정도의 변화가 생길 것이며, 2050년경에는 오늘날의 세상이 간신히 기록에나 남을 만큼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공상과학이 아니다. 과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이 일관되게 예측하는 바이고, 과거의 역사의 추세를 살펴봐도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35년 후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변화가 있을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 뭐 어쩌라고.”와 같이 심드렁하게 반응하게 될까? 다음은 우리가 기상천외한 미래예측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3가지 이유이다.

 


1. 역사를 선형적으로 파악한다



앞으로 30년동안 있을 진보를 상상할 때, 지난 30년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21세기가 끝날 즈음에 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에 대해 상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20세기에 이룩했던 진보를 가져다 2000년에 더한다. 마치 1750년의 사람이 1500년의 사람을 데려다가 본인이 느낀 충격을 느끼기를 기대하듯이 말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역사를 선형적으로 생각한다. 실은 기하급수적으로 생각해야함에도 말이다. 좀 더 현명한자라면, 지금 현재의 발전속도를 가정하여 미래를 예측하겠지만, 사실 이것도 부정확할 것이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변화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변화를 상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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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역사의 궤적은 종종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방해한다.


 


첫째, 지수함수가 그리는 가파른 곡선이 선형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래프와 맞닿는 접선을 상정하기 때문이다. 둘째, 기하급수적인 발전은 완전히 균일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Kurzweil은 이에 대해 ‘S자 곡선형태로 설명한다.


S곡선이 그리는 선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세상을 의미한다. 곡선은 다음 3단계를 거쳐서 상승곡선을 그린다.  


  • 느린 발전(S곡선의 상대적으로 느린 부분)

  • 급격한 발전(S곡선에서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부분)

  • 특정 패러다임이 자리를 잡음에 따라 안정을 취하는 부분

  



우리가 지금 올라가 있는 S곡선위에서 근시안적으로 바라본다면, 기술이 얼마나 빨리 발전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수도 있다. 1995년과 2007년사이의 기간동안 인터넷의 급격한 확장이 일어났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그리고 페이스북이 사람들의 의식안에 완전히 자리잡았다. 소셜 네트워크가 시작되었고 휴대폰이 보급되었으며 마침내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이것이 바로 S곡선의 2단계, 급격한 발전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그러나 2008년부터 2015년까지의 기간은 다시 미세한 기술의 발전만 있었을 뿐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미래를 생각할 때, 지난 몇 년간의 변화의 속도를 반추하고 이를 그대로 미래의 발전속도에 대입하려고 한다. 이러면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거대한 S곡선의 2단계가 이미 꿈틀거리고 있다. 실제로 일반인들도 이미 2015년에서 2016년을 거치는 동안, 한동안 답보상태에 빠졌던 기술발전이 머신러닝과 인공지능, IoT등의 부상으로 다시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3. 우리의 경험이 미래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구시대사람으로 만든다.


 


우리는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미래에 대해 추측한다. 다시 말해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은 때때로 우리의 한계가 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지식과 경험은 미래를 예상하는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없다. 경험에 반하는 미래 예측을 듣는다면, 우리의 직관은 이를 너무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당신이 150, 250살 혹은 영원히 살수 있을 것이란 예측을 듣는다면, 직관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말되 안되는 소리하고 있네,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이었어.” 맞다. 죽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비행기가 발명되기 이전엔 하늘을 날아다닌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당신이 하는 미래에 대한 어떤 예측도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역사적 패턴을 충분히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다음 수십년간 일어날 변화는 우리의 직관적 판단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만약 지구에서 가장 진보한 종인 인류가 지금보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진보를 계속한다면,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있는) 인류라는 종의 개념이 바뀔 정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최근 일어나는 기술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이미 이런 변화의 조짐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인류와 가까운 미래의 인류는 같은 종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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