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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세계가 핵전쟁으로 파멸하지 않은 이유

category # 역 사 2018. 3. 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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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확증파괴


서로 적대하고 있는 국가가 핵무기를 손에 넣게 되면, 대립의 양상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차라리 깔끔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군대의 사기, 보급과 같은 전통적인 전쟁 분석 방법은 덜 중요해지고, 수백 수천의 크고 작은 전술적 결정이 한두개의 매우 중요한 전략적 결정으로 바뀌게 된다. 예를 들면, ‘핵 보유국인 상대국에 핵공격을 가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와 같이 말이다.


 

핵폭탄과 같은 위험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만약 한 나라가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상대편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동맹국들이나 다른 핵보유 국가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결정은 사실 핵무기 사용이라는 행위가 불러올 연쇄반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단순히 어떤 국가가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 만으로도 또다른 핵보유국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존 핵보유국들의 우려,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핵무장을 시도하는 주변국가들의 도미노 반응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냉전 기간동안 핵무기 사용에 대한 의사결정은 기존의 군사전략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략적 의사결정을 이해하는 새로운 이론인 게임 이론에서 나왔다. 이 분석적 접근법은 미국과 소련사이의 대치상황이 내쉬 균형을 이룬다는 것을 암시했다. 상대방의 보복능력이 확실하다면, 어느 누구도 선제 핵타격이 불가능하며, 동시에 상대방의 선제공격에 맞서 보복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스스로 핵무장을 해제할 수도 없었다.

 

폰 노이만이 이름 붙인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라는 전략은 그 무시무시한 이름에도 불구하고, 냉전기간 중 미국과 소련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끝없는 위협으로 유지되는 평화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우 불안정한 것이었다.

 


최후의 날


냉전은 겉으로 유지되었던 평화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오랜 평화를 누리고 있었던 유럽을 세계 1차대전의 전화속으로 몰아넣었던 힘이 냉전시기에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1914년 유럽대륙을 차례차례 전쟁으로 끌어드린 것은 사라예보에서의 총알이 아니라, 유럽 각국들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발령한 동원령이었다. 각국의 반응이 연쇄적으로 작용해 유럽 대륙은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전쟁에 끌려들어가게 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오늘날 세계가 맞이하고 있는 위협은 강대국들이 제도적으로 핵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복잡한 핵 공격 및 방어 체계는 20세기 초의 복잡한 국제분쟁 매커니즘을 상기시킨다. 갑작스러운 세계 1차대전의 발발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유럽 강대국들 사이의 제도화된 전쟁준비 계획, 지난 수십년간 개발된 신무기를 고려해 봤을 때, 세계대전이 아닌 다른 결말을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핵전쟁Photo by Caroline Methot on Unsplash


실제로도 핵전쟁이 코앞에까지 다가왔던 적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냉전이 끝나고 알려졌다. 소련의 죽음의 손, Dead Hand” 시스템은 일종의 파괴보장 시스템이었는데, 서방의 선제 핵공격으로 인해 지휘부가 붕괴되면 남아있는 소련의 모든 핵미사일을 발사해 보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죽음의 손 시스템에는 적국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가 있었고, 레이더에서 적국의 미사일 발사를 감지하면, 지하 깊숙이 마련된 벙커에 있는 소수의 장교들에게 통보하게 되고, 이들은 인류의 최후를 맞이하게 할 버튼을 누르게 될 것이었다.

 


정말 위험했던 것은, 소련이 이 같은 최후의 날장치를 구축했다는 사실을 서방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64년작 스탠리 큐브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소련이 “Doomsday Device”를 구축한 것을 모른 채 소련에 대한 핵공격을 감행하려던 미국은 이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공격을 취소한다. 이렇듯 상대방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시스템은 상대방에게 알려져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 상대방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도 이를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으면 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소련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냉전시기 미국이 겉으로만 드러난 소련의 핵전력을 보고 선제공격을 감행했다면, 오늘날 지구의 모습은 매우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신의 가호인지, 아니면 엄청난 행운의 덕분인지는 몰라도, 첨예한 긴장상태와 일촉즉발의 방어 체계에도 불구하고, 두 초강대국 사이의 핵전쟁은 발발하지 않았다. 사실 냉전 중, 핵전쟁 발발 위기가 수차례 있었지만, 다행히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1983년 어느 날, 소련의 방공기지에서 핵미사일 조기경보 시스템이 5기의 미국 탄도미사일이 접근하고 있다는 경보를 발령했다. 당시 오코의 방공장교로 근무하고 있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이 경보를 확인하고는 새로 설치된 컴퓨터의 오류라 판단하고,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호전적인 성향을 지닌 상급자가 이 같은 보고를 듣게 되면 즉각 보복공격을 명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관계는 작은 오해가 전쟁으로 확산될 만큼 긴장 상태였고, 만약 페트로프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대규모 핵전쟁을 겪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소련의 잠수함 장교 바실리 아키포프 역시 세계를 핵전쟁으로부터 구원했다. 미 해군은 쿠바 해안 근처에 있던 아키포프의 잠수함 B-59를 향해 위협 공격을 가하였다. 현 위치에서 이탈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당시 잠수함 안에 있던 다른 소련 장교들은 미 해군이 소련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개시한 것으로 판단하고 잠수함에 탑재되어 있던 핵 어뢰를 미국함대에 발사할 것을 주장했다. 그리고 만약 실제로 핵 어뢰가 미국 함대를 공격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키포프는 이 같은 주장을 기각하고, 얌전하게 수면위로 부상해 교전의사가 없음을 보이며 소련으로 귀환했다.

 

이 밖에도 냉전기간 중,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핵전쟁 위기가 있었다. 이 중 일부는 위 사례와 같이 핵전쟁과 매우 근접하기도 했다. 미국의 딘 애치슨 전 국무부 장관은 인류가 냉전기간을 핵전쟁 없이 지나왔던 것은 말 그대로 엄청난 행운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게임이론?


하지만 이 모든 핵 전쟁 위기를 겪은 후, 사람들은 이것이 정말 말도 안되는 행운 덕분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쉬 균형은 갈등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이고 완벽한 논리적 접근법을 정확히 설명한다 .그리고 게임 이론가들의 충고에 따라 소련과 미국은 그들의 핵무기가 상대방을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위해 엄청난 노력을 경주했다. 그런데 정작 무언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 명백한 공격 징후에 단호한 대응을 한다거나, 상대방의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그리고 이를 활용할 기회가 있을 때, 양국은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르지 않았다. 두 초강대국은 마치 눈싸움을 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몇 번씩이나 동시에 눈을 깜빡거린 것이다.

 

아마도 수백만의 생명이 저울위에 올려져 있을 때, 사람의 마음은 오래된 게임 이론이 암시하듯이 그렇게 이성적이고 냉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좀더 다른 차원의 이성을 사용한 게임을 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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