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스와이프하여 시간과 위치를 알려주고, 별자리를 표시하고, 이를 통해 별자리 점궤도 보여주는 기계를 상상해보자. 사용자에 따라 최적화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벨소리도 함께 제공되며 가격도 꽤나 비싼 물건이다. 이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에서 근대 문명이 발달하기 전까지 널리 쓰였던 도구인 아스트롤라베(Astrolabe)이다.
시간과 별자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천문계산기구인 아스트롤라베. 사진은 모로코에서 발견된 16세기의 구체평면도 아스트롤라베이다.
스마트폰처럼 아스트롤라베는 문명이 번영하던 시기에 발명되었다.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때부터 심지어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였다. 지금 보기엔 반쯤은 과학적이고 반쯤은 미스터리한 이 장치는 오늘날 정교한 스위스 시계 같은 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아스트롤라베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가고 있지만 아직 이를 찾는 사람이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천문학과 과학사를 전공한 Owen Gingerich가 그 중 한사람이다. 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학생이 가족의 의료비를 대기위해 가보였던 아스트롤라베를 그에게 팔기 위해 가져왔다고 한다.
“그래도 그런 물건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기에, 아스트롤라베에 대해 관심이 있긴 했습니다. 비록 전에는 만져본적이 없긴 했지만요.” 그리고 강의에 사용하기 위해 구입했다고한다. “하지만 아스트롤라베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자 마자, 보통 물건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에게 곧바로 수표 몇 장을 더 보내야했죠.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스트롤라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어 아스트롤라베는 대략 “별을 찾는 자”정도로 번역이 된다. 아스트롤라베는 유럽에서 발명되어 대략 8세기 이후에 이슬람세계로 흘러 들어갔다고 추정된다.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에 만들어진 아스트롤라베는 그 목적과 만든 이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작은 커피잔 정도의 사이즈일 수도 있고 큰 쓰레기통의 뚜껑만큼 크기도 하며, 나무에서 황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다목적 도구는 “mater”라고 불리는 디스크 위에 여러가지 목적을 가진 원형부품들이 겹겹이 올려진 형태로 구성된다. 위도선이 그려진 2차원 지도가 동그란 판이 ‘mater’위에 그려져 있고, 그 위에는 ‘rete’라 불리는 동그란 판에 잘 알려진 별자리 그림이 그려져 있다. ‘mater’의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눈금자가 위치한다. 그리고 아스트롤라베의 뒷면에는, 아스트롤라베를 사용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별의 고도를 찾을 수 있는 회전식 위치지정장치가 달려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사용했던 아스트롤라베
하늘의 모양은 위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아스트롤라베는 대도시의 서로 다른 위도에 맞는 여러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아스트롤라베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것은 대게 황동으로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Gingerich 교수는 황동으로 만든 아스트롤라베는 아마도 엘리트 계급이 사용했던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아스트롤라베는 마치 자격증과 같았습니다. 사무실의 벽에 걸어 놓고 ‘난 이런 것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았죠.”
화려한 아스트롤라베는 지금까지 남아있지만, 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했을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아스트롤라베는 아마도 썩어서 사라졌거나, 용광로에서 녹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화려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실용적인 기능을 가진 수많은 아스트롤라베가 있었을 것이고, 당시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실용적인 기능을 가진 대신 화려한 장식이 없었을 것이다.
아스트롤라베로 가능했던 작업들은 많았다. 과학적인 작업과 오늘날 우리가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다양한 용도로 상용되었는데, 특히 메카를 향해 하루 5번 기도를 해야하는 이슬람 교도들에게 메카의 방향을 찾는 용도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중세 유럽에서도 널리 퍼졌는데, 유럽인들은 점성술을 통해 전쟁에 나가야할지 말아야할지, 사업적 거래를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뉴욕대의 연구원이자 고대 천문학의 전문가인 Alexander Jones는 아스트롤라베를 누가 발명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은 유실된 파피루스에 최초의 아스트롤라베가 기록되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최초의 아스트롤라베는 로마시대의 유명한 그리스 천문학자인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2세기 이전에 발명되었을 것이라는 유력한 기록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계산을 위해 아스트롤라베와 비슷한 3차원의 계산도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Jones는 프톨레마이우스가 이처럼 진보된 물건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제국의 번영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그 당시의 과학활동은 단순히 그 분야에 대한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제국이 혼란에 빠지고, 황제가 2년마다 암살당하며 경제활동이 완전히 혼란에 빠졌을 때, 제국의 지적활동이 소강상태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첫번째 스마트폰은 미국의 경제가 호황을 누리던 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발명되었죠.”
이러한 추론을 바탕으로 Jones는 최초의 아스트롤라베의 발명이 프톨레마이오스가 활동하던 시기 나 로마가 혼란을 겪던 기원전 3세기를 건너뛴 기원전 4,5세기 경에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정하고있다.
원양을 항해할때 항로를 찾는데 사용한 아스트롤라베. 마닐라 항의 난파선에서 1917년 발견되었다. 포루투갈 선원들이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됨.
비록 오늘날 아스트롤라베가 원시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 원시적인 기계가 오늘날 과학 발전에 큰 영감을 주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스트롤라베로 인해 새로운 수학방법과 초기 천문학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그 당시에는 천문학과 많은 것을 공유하던 점성술의 발전도 가져왔다.
“아스트롤라베가 보여주는 별들의 연감을 보면, 점성술사들은 별이 어디로 이동할지 예상할 수 있었고, 좀더 정밀한 예상을 내놓기 위한 점성술사들의 노력 덕분에 천문학이 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스트롤라베는 또한 기상학을 포함한 과학의 여러 분야에도 영감을 주었다. 오늘날에는 위성과 레이더가 제공하는 실시간 업데이트를 통해 일기예보를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의 시대부터 1800년대에 이르기까지 기상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점성술에 의지했다고 한다.
특히, 아스트롤라베는 대항해시대 바다에서 위치를 찾기 위한 일종의 네비게이션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콜럼버스가 탐험할 때 사용했던 도구 목록에 포함되어있었을 것이고, 북극성을 이용해서 항로를 찾곤 했던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북극성이 보이지 않는 적도 근처를 항해하면서 위치를 확인하는데도 사용되었다.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1488년 희망봉의 위도를 알아내기 위해 아스트롤라베를 사용했습니다. 탐험대가 적도를 지나 남쪽 저 멀리 있었기에 북극성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죠.” 실제로 오늘날 아스트롤라베의 대부분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탐험선의 난파선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그러나 17세기에서 18세기를 거치면서 기계식 시계가 더욱 안정적이고 저렴해 졌고, 과학에 대한 새로운 합리적인 접근이 시도되면서, 점성술에 대한 믿음과 아스트롤라베의 필요성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스트롤라베는 점차 유행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근대의 기계식시계, 항해를 위한 육분의, 그리고 한참 뒤 오늘날의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도구들에 의해 밀려나버렸다. 그리고 최근 스마트폰에 의해 아스트롤라베의 개념이 다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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