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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훈련의 부활



첨단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군사력의 우위는 군사 기술의 발전 수준에 달려있다고 믿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더 좋은 미사일, 더 좋은 전투기를 가진 국가가 21세기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쟁에서 우위를 가져오는 또 다른 요소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정상적인 국가에서 강도 높은 군사훈련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군사훈련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아주 먼 옛날, 로마에서 처음으로 군단병들을 위한 훈련을 도입했다. 그리고 이는 16세기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1567~1625)이 다시 부활시키고 근대적인 훈련 제도를 확립할 때까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저지대 국가들을 지배중이었던 스페인 제국에 대한 독립운동을 펼치던 오라녜 공은, 로마 군단의 전례를 따라 체계적인 훈련을 도입했다. 42개의 연속된 동작으로 이루어진 화승총 발사 훈련을 끝없이 반복해서 실시한 것이다. 오라녜 공은 마찬가지로 이동 중에도 적절한 대형을 유지하라 수 있도록 행군 역시 표준화 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오라녜 공이 이끄는 네덜란드 독립군은 동시에 일제 사격을 퍼부을 수 있는 강군으로 거듭났다.

 

여기에 더해, 오라녜 공은 그의 군대를 조그만 전술적 단위로 쪼갰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로마 군단병의 편제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550명으로 구성된 대대를 중대와 소대로 세분화했다. 소대는 단일한 지휘아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 단위였다. 오라녜 공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변화는 역행을 통해 일제사격을 도입함으로써 군대의 화력을 강화한 것이다.

 

물론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가 이미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일제 사격을 선보였고, 오스만의 예니체리는 1605년 밀집대형 전술 훈련을 실시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오라녜 공이 도입한 밀집대형과 일제사격 그리고 강력한 군사훈련 덕분에 해외에 파견된 유럽의 군대는 현지인들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을 뽐낼 수 있었다.

 

17, 18세기 그리고 19세기의 첫 60년 동안, 총검을 장착하고 밀집 대형을 형성한 잘 훈련된 유럽의 군대는 전투가 벌어지면 근접 거리에서 적에게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이는 아시아와 남미에 벌어진 수많은 전투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인 요소였다. 특히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주었던 총검 돌격 전술은 잘 훈련된 군대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영국의 인도 정복



영국이 인도를 정복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것은 영국제 머스킷을 비롯한 군사 기술보다는 소총에 장착되어 있던 3각형의 칼날을 가진 총검이었다. 1866년 후장식 엔필드 라이플 소총의 도입과 이로 인해 더 용이해진 일제사격만이 총검보다 인도정복에 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와 19세기 전반기에 벌어진 수많은 전투에서, 인도군은 영국군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들어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 동인도 회사가 보유한 대포는 8문에 불과했지만, 무굴 제국은 영국군 보다 더 큰 구경을 가진 53문에 달하는 포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1799년 제 4차 영국-마이소르 전쟁 중 스리랑카가파트나를 영국군이 함락시켰을 때, 성 안에는 900문에 달하는 대포가 있었다. 반면 영국과 동맹 영주들이 보유한 대포는 100문에도 미치지 못했다.

 

19세기 영국군이 맞이했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시크 제국이었다. 특히 시크 제국은 강력한 포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1845년 제 1차 영국-시크 제국 전쟁 당시, 시크 제국은 전투에 250문의 근대식 대포를 동원했다. 영국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대상이 바로 이 시크 제국 포병이었다. 2차 영국-시크 제국 전쟁 중에 있었던 칠리안왈라 전투에서는 시크 제국군에 대한 기습공격에 나섰던 영국군들이 시크 제국군의 정확한 대응사격을 견디지 못하고 엄청난 피해를 입은 채 후퇴해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영국은 승리를 거두었다. “좋은 군인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명령 받은 일을 수행할 뿐이다.” 이는 현대의 전쟁에는 더 이상 부합 하지는 않지만, 오라녜 공의 네덜란드 독립군 그리고 17~19세기 초반의 영국군의 사례는 군사기술만으로는 전장에서의 승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오늘날 무기체계 그리고 군사기술 만능주의에 경도된 오늘날의 집착은 균형 잡히지 못한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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