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와 빛의 전당

category # 역 사 2017. 8. 9. 15:07
728x90
반응형

뉘른베르크 전당대회



1933년 독일의 정권을 잡은 히틀러와 나치는 매년 뉘른베르크에서 대규모 전당대회를 열었다. 나치는 광신도들을 뉘른베르크에 집결시켰고, 나치의 선전부서에서는 이 전당대회를 독일 국민과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화려한 선전의 장으로 만들었다.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는 나치에서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11km2에 달하는 특별 총회장에서 매년 11월 개최되었다.

 

독일의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었던 레니 리펜슈탈은 히틀러의 요청에 따라 여러차례 나치의 전당대회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록했다. 그 중 각각 1993년과 1935년 전당대회를 기록한 신념의 승리의지의 승리는 당시로서는 차원이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나치의 정당성과 힘을 독일 국민과 세계에 과시했다.

 


빛의 전당, Cathedral of Light




수십만명에 이르는 열성적인 나치당원들이 압도적인 광경을 연출하기 위해 광장에 도열했지만, 이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는 건축가 알버트 스피어의 빛의 전당, Cathedral of Light’였다.

 

미완성된 스타디움을 임시로 꾸미기 위한 목적이었던 빛의 전당은 12미터 간격으로 놓여진 152개의 대공 서치라이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밤이 되면 서치라이트는 하늘을 향해 직각으로 빛을 뿜어냈고, 전당대회장에는 찬란한 빛의 벽이 생겼다.

 

사실 여기에 동원된 152개의 대공 서치라이트는 독일에 있는 거의 모든 대공 서치라이트를 동원해서 만든 것이었다. 루프트바페의 헤르만 괴링 원수는 귀중한 전략자원을 이런 식으로 동원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히틀러는 차라리 이런 과시를 통해 적국을 기만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193911월에 계획되었던 전당대회의 주제는 평화의 대회였는데, 전당대회 개막을 단 3달전 독일의 전격적인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2차대전이 시작되면서 취소되었다.

 




빛의 전당은 80년이 지난 오늘날 봐도 엄청나게 세련되고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그 당시 독일 국민들과, 현장에 있던 나치 당원들이 이 관경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프로토스와 같은 압도적인 외계문명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빛의 전당은, 어째서 이미지가 중요한지, 그리고 왜 이미지를 믿어서는 안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