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
일본의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가 관련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었지만 인구가 감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년 일본의 신생아 수는 100만이 채 넘지 못했으며, 인구는 약 30만명이 감소했다.
일본에서는 충분한 성관계를 하지 않는 젊은이들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생각은 하지 않고 커리어에만 집중하는 여성들에게서 문제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저출산에는 사실 더 명확한 원인이 존재한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일본의 저출산 문제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바로 일본의 젊은 세대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 역시 아직까지 남성이 가정의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일본의 장기불황으로 인해 좋은 일자리가 많이 사라지자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하는 남성들이 많아 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실 일본과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을 낮아지고 있으며, 결혼율도 전체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경제적 불안이다.
저출산의 경제적 문제
하지만 사실 일본의 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외부 사람들은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외관상 보기에 일본의 경제는 오랜 침체를 벗어나 기지게를 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일본의 실업률은 겨우 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경제적 기회의 문제는 전 세계가 동시에 겪고 있는 문제와 그 궤가 맞닿아 있다. 바로 비정규직의 확산이다.
사실 전후부터 이어져온 일본의 경제적 전통이 바로 연공서열에 기반한 평생직장 개념이다. 사회로 나온 후 잡은 첫 직장에서 충분한 임금을 보장받으며 은퇴할 때까지 회사에 충성을 다하고 회사 역시 이들의 고용을 보장해주는 분위기였다. 이는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이미 40%에 육박한다. 이 말은 즉, 이들은 더 이상 안정된 직장을 보장받지 못하고 영속성이 보장되지 않는 파트타임 잡을 뛰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충분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커리어도 쌓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 약 20%정도만이 후에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1995년부터 2008년 사이에 일본의 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는 약 380만명이 감소했고 반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는 760만명이 증가했다.
일본의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흔히 “프리터”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프리랜서와 아르바이트의 합성어이다. 1990년대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일본의 비정규직은 정부가 노동법을 개정하면서 비정규직과 계약직 노동자 그리고 인력업체를 통한 파견직의 확대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불어 닥친 세계화의 열풍과 일본의 장기침체도 기업의 비용절감을 압박했다.
저출산의 사회적 문제
일본에서는 현재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 탄탄한 직장을 잡고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 남성이 한 가정의 가장역할을 하며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팽한 일본에서 이는 결혼과 양육에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 정규직이 아닌 남성들은 적당한 결혼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으며,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고 싶어해도 양측 모두 정규직이 아닌 이상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로 인해 틀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30대 초반 비정규직 중 결혼을 한 비율은 채 30퍼센트가 되지 않는다. 반면 30대 초반 정규직의 결혼 비율은 56%에 달한다. 일본에는 남성은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며, 대학 졸업을 하고도 정규직으로 채용되지 못한다면 인생에서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일본의 여성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여성들 역시 정규직을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대부분은 비정규직 혹은 아르바이트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다. 그리고 가족을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일이 규칙적이지 않으며 페이 또한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남성이 겪는 어려움이 더 크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첫 아이가 태어나면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 수입의 대부분을 남성에게 의존한다.
일본의 대도시에서는 젊고 능력 있는 남성들이 부족하다는 여성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도쿄의 한 결혼 매칭 업체에서는 대도시의 여성과 지방 도시의 남성을 매칭하려 하고 있다. 그래도 지방의 견실한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젊은 남성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는 일본의 초식 문화와 연결이 되어 있다.
흔히 초식남이라고도 부르는 일본의 도시 남성들은 남성적이지도 않고 결혼도 그리 원하지 않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18세부터 34세 사이의 결혼하지 않은 남성의 70%,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60%가 현재 이성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PC방 난민이다. 일본의 PC방은 우리나라와 달리 일종의 찜질방 기능을 겸하고 있는데 충분한 연봉을 받지 못하는 일본의 젊은 비정규직들이 PC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조차 하지 못하는 자들은 캥거루족이라 해서 30대가 넘어서 까지 부모님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비정규직의 한달 월급이 평균 19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돈으로는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 숙식, 학자금 대출 상환, 사회보장비용 납부도 불가능한 수준이다. 대학 졸업생의 약 1/4정도만이 괜찮은 직업을 잡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매우 비참하다. 그 결과 20대 남성들은 가정을 이루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수준이라고 한다.
기업문화적 문제
비정규직의 확대는 단순히 비정규직 노동을 하고 있는 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엄청난 수의 비정규직 덕분에 회사는 정규직마저 쥐어짜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단순히 정규직이라는 것만해도 감지덕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본의 20~30대는 엄청난 초과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연장근무 수당은 거의 없다. 물론 일본의 문화 자체가 초과근무를 당연시하기는 한다. ‘카로시’ 한국어로 과로사는 아예 고유명사로 영어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을 정도이다. 물론 요새는 한국이 더 앞서 나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지난 일어버린 20년 기간 동안 이 경향은 더욱 강해졌는데, 일본에 괜찮은 직장이 많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기업들은 노동자를 쥐어 짜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회사를 부르는 ‘블랙 기업’이란 유행어가 있다. 이 같은 과다 노동으로 이득을 없는 일종의 악질 기업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현재 일본에서 이 단어가 대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언론과 잡지 등에서는 올해의 블랙 기업 어워드를 하기도 한다. (지난 2015년에는 세븐-일레븐이 선정되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해도 객관적으로는 매우 가혹한 자리인 경우가 많다. 이런 직장을 가진 사람은 그래도 괜찮은 수입을 올리지만, 거의 회사에 묶여 있어 사생활이란 것이 없어진다.
일본의 회사에서는 서류상 직원들의 퇴근 시간은 7시로 기록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비공식적으로 거의 자정 가까이 일을 한다. 직원들은 7시에 강제로 컴퓨터를 종료하고 아이패드를 통해 업무를 진행한다. 만약 컴퓨터를 끄지 않으면 인사부에서 전화가 와서 당장 끄고 일하라고 하기도 한다. 그 결과 정규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성교제를 할 시간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던 삶은 아닐 것이다. 직장인들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덕분에 일본의 정신과는 성업을 누리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공통적 문제
물론 일본이 비정규직의 확대와 이에 따른 문제를 겪고 있는 유일한 국가도 아니며,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유일한 국가도 아니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 혹은 다른 선진국의 차이점은 일본의 문화에서는 여전히 정규직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본의 비정규직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게 저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정규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두번째로,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일본에서는 과로와 장시간 근무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며, 심지어 상사가 퇴근하기 전에 부하직원이 퇴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불평하면 조직에서 왕따를 당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는 노동조합의 힘이 극도로 약하다. 또 노동조합이 있다해도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보다는 회사와 협력하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노동조합의 지상과제인 경우가 많다. 노동자를 위한 노조이기 보다는 차라리 사측을 위한 노조인 것이다.
일본이 겪고 있는 문제는 우리나라 역시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일본의 기업문화인 연공서열을 그대로 받아드렸다가 IMF 이후 급속하게 신자유주의로 이동했으며, 노동시간으로는 일본을 가볍게 능가하고 있고, 노동조합 역시 일부 강성노조들을 제외하면 거의 힘이 없거나 어용노조에 불과하다. 과중한 노동시간과 넉넉치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결혼과 출산의 비율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것도 동일한 원인과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내각 역시 이 같은 문제에 대해 경고하고 나서긴 했지만 학계에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노동 개혁 위원회의 정부측 위원은 초과 근로 시간을 월간 100시간으로 제안할 것을 안건으로 올렸고, 정부 측에서는 노동법 위반 기업 리스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베 정권은 친기업, 탈규제를 표방하고 있기에, 이 같은 조치는 거의 보여주기식에 가깝다고 한다.
아베 정부는 일본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아베 정부에서 쏟아낸 대책은 여성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여성이 일과 가정 양쪽 모두에서 안정을 찾는 것은 저출산 문제 해결에 중요한 사안이긴 하지만, 현재 일본 문화 아래서 이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일본 남성들은 오랫동안 가정을 책임지며 가장역할을 해왔고, 또 이것이 남성들에게 요구되는 미덕이기도 했다. 하지만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서 남성에게 부여되는 수많은 요구들이 줄어들지 않고 안정을 찾지 못한다면 일본 정부가 추구하는 수 많은 대책 역시 소용 없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저출산은 일본보다 훨씬 심한 상황이다. 2007년 출산율 1.25명, 신생아 수 49만명에서 2016년에는 출산율 1.17명, 신생아 수 40만명으로 급감했다. 올해는 아예 30만명 대로 내려앉을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혼인율이다. 2007년 혼인건수는 34만 건, 1000명 당 혼인 건수는 7건이었지만 2016년에는 각각 28만 건, 5.5건으로 주저 앉았다.
일본이 겪고 있는 문제는 정도와 행태만 약간 다를 뿐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경제적 궁핍, 시간적 여유의 부족, 남성은 돈을 잘 벌고 여성은 육아를 해야 한다는 성별 역할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저출산 문제는 어느 한 분야에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사회 문화, 기업 문화, 제도적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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