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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시골마을의 기본소득 실험과 현금원조

category # 생 각 들 2017. 3. 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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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은 가난했다. 케냐의 시골을 기준으로 해도 가난한 편이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전신주를 따라 나 있는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야한다. 그 전신주는 마을의 중심에 있는 학교로 연결되어 있는데, 마을에서 유일하게 전기가 들어오는 건물이었다. 농장들은 가시덤불로 가득한 언덕을 따라 펼쳐져 있었고 그들을 이어주는 것은 거친 오솔길들뿐이었다. 마을에는 수도꼭지가 하나 밖에 없었는데, 동네의 모든 여성들이 이 수도꼭지에 모여서 드럼통에 물을 받아갔다. 배관도 없고, 어떤 가족들은 아직도 야외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화장실과 하수시설을 마련할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쟁기를 멜 수 있는 튼튼한 황소도 없었는데, 이는 대부분의 농장 작업을 사람 손으로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마을은 너무 가난한 나머지, 공공장소에서 음식을 먹는 것 마저 무례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음식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에서 였다.

 

지난 10월 오사마 빈라덴과 JaKogelo와 같은 아프리카의 영웅들의 사진으로 꾸며놓은 붉은색 황토 집에서 이 마을의 촌장 Kennedy Aswan Abagi를 만날 수 있었다. JaKogelo Kogelo에서 온 남자를 의미하는데, Kogelo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가 태어난 곳이이며, 이 마을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빅토리아 호수 유역에 위치해 있다. Abagi는 그의 마을의 운명이 바뀐 날에 대해 말해주었다. 한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GiveDirectly라는 미국의 비영리 단체의 현장요원이 마을의 전원에게 아무 조건 없이 돈을 주고 싶다는 믿기 어려운 제안을 해왔다. 왜 이 마을이었을까? Abagi는 기억을 떠올려보았지만, 왜 그의 마을에 이런 제안을 하였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혹은 이 질문이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구의 구호단체들이 이 마을에 방문한 적은 있지만, 구호물품정도만 가져왔을 뿐 돈을 지원해준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단체들은 대게 종교단체였기에, 도덕적인 요구가 동반되기도 하였다. 어떤 단체에서는 혼외관계에서 출생한 아이를 가진 젊은 어머니들에게는 도움을 거절한 사례도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누가 누구에게서 왜 이런 제안을 하였는지에 대해 알려진 것이 적었기에, 소문만 곧 무성하게 커져갔다. 한 마을 사람은 GiveDirect가 아이를 납치해 간다고 듣기도 했다. 이 단체가 일루미나티와 연관되어 있다거나, 거대한 뱀을 소환하여 마을을 황폐화시키거나, 흑마법을 시전할 것이란 얘기도 돌았다. 다른 소문에서는 오바마가 이 자금을 지원한다는 말도 들렸다.

 

그러나 이런 혼란은 때에 맞지 않게 쌀쌀했던 어느 10월 아침 GiveDirect가 마을회의를 통해서 본인들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곧 해소되었다. 마을 주민 220명 중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학교 건물 근처에 위치한 파란색과 흰색 천막에 모여, 13명의 외지인들이 맞은편의 플라스틱의자에 앉아 하는 말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들었다. 이들 중 일부만이 백인이었다. GiveDirect의 케냐인 직원인 Lydia Tala는 일어서서 Dholuo언어로 주민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그녀는 신중히 말을 이어나갔고, 주민들은 그녀가 하는 말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GiveDirectly가 미국에 근거를 둔 어느 정치적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비정부기구란 것과 핸드폰을 통해 일을 한다는 것을 밝혔다. 모든 참가자들은 본인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어야하며, PIN번호를 비밀로 유지해야 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범죄나 테러행위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도 제시하였다. 이 이야기는 거의 2시간 가까이 이어졌으며 아이들은 곧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Tala는 마이크를 동료 Brian Ouma에게 넘겼다. “주민 여러분, 만족하십니까?”

 

“네 좋습니다.”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GiveDirectly는 세부 사항을 전달했다. “등록된 모든 사람은 매달 2280실링( 22달러)를 받을 것입니다. 이해하시죠?” 관객들은 환호를 하며 박수를 보냈다. “우리가 여기 등록하는 모든 분들에게 매달 돈을 드리겠습니다! 매달 2280실링! 이 돈은 여러분들은 앞으로 12년 동안 받을 수 있습니다. 몇 년이라고요?”

 

12년이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그리고 낯선이들 앞에서 춤추는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마을 전체가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났다. GiveDirectly 40여개의 마을에서 총 6000여명의 성인을 이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있었다. 가난을 끝낼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12년동안 지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추가로 80여개 마을의 11500여명의 주민들은 여기에 더해 2년간의 기본 소득을 받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뉴욕에 사무실을 두고 자금의 대부분을 실리콘 밸리로부터 지원받는 GiveDirectly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아이디어는 아마도 좌파가 정권을 잡은 캐나다, 스코틀랜드, 핀란드 같은 쌀쌀한 지역에서 유행이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 아이디어는 인도나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같이 매우 가난한 지역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매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GiveDirectly는 기본소득이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원조를 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방안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극심한 빈곤을 올해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있습니다.” GiveDirectly의 창립자 Michael Faye는 이렇게 말햇다. 그러나 이 자원들은 대게 잘못 쓰여 지거나 낭비되어버리고 만다. 그의 비영리재단 GiveDirectly는 기존의 자선단체에 충격을 주고, 기부자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큰 비용 없이 즉시 그리고 현실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부 플랫폼을 제공하려 한다.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해외원조 기관의 변혁시킬 잠재력이 있지만, 그 효과는 가정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실리콘 밸리의 GiveDriectly 후원자들을 포함하여,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파일럿 프로젝트가 단순한 자선사업으로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기본소득이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올바른 길이라고 여기고 있다.

 

기본소득은 지난 50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수면위로 등장했다가 사라진 호기심 넘치고 지적인 호기심의 조각이었다. 특히 경제적 변동기에 종종 주장되었다. 1516년 토마스 모어의유토피아에서는 당시 공유지가 사유지로 변해가면서 피해를 입은 영지 농민들을 도울 방법으로 기본소득을 제안하였으며, 1797년 발간된 토마스 페인은토지분배의 정의에서도 비슷한 이유로토지소유제도의 도입으로 피해를 입은사람들에게 보상해주기 위해 기본소득을 제한했다. 그리고 이런 주장은 프랑스의 급진적 혁명가들, 버트란드 러셀과 마틴루터 킹 주니어의 저서에서도 다시 등장했다.

 

실리콘 밸리는 4차 산업혁명에 접어들면서 새로 등장할 로봇이나 인공지능과 같은 새로운 발명품들에 의해 야기된 사회적 거부감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많은 기술자들은 인류는 지금 탈 노동시대로 진입하기 직전인 AI 혁명의 초입에 있다고 믿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인공지능 시스템은 암세포 검사부터 자동차 운전, 스포츠 게임 요약, 산문 번역에 이르기 까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업무에 벌써 익숙해졌다. 재무 분석, 마케팅, 법률 업무와 같이 세부적인 단계로 분리 가능하며, 반복적인 작업이 계속되는 어떤 직업도 자동화가 진행되면 사라질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이러한 전망에서 우리 경제는 극단적인 소득과 부의 불평등, 빈곤의 증가, 대규모 실업과 같은 문제로 인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 예상된다. 그런데 이 문제와 케냐의 작은 마을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보편적인 기본소득은 지금까지 기술자들이 개념증명(Proof of Concept)라 부르는 것이 부족했다. 캐나다, 인도, 나미비아 등을 포함한 몇몇 지역에서 실험이 있었다. 핀란드는 실업자에게 수당을 주었고, 네덜란드의 위트레흐트는 이미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의 전원에게 장기간 꾸준히 기본소득을 지급하였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없었다. 다음식사에 대한 두려움과 실업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회에선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하여 실리콘벨리의 기술업계는 GiveDirectly와 다른 기구들이 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공동창업자이자 The New Public의 소유주인 Chris Hughes는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1천만달러 규모의 2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Sam Altman의 창업 보육센터인 Y Combinator의 연구조사단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1,000가구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또 다른 주에 돈을 기부할 계획이다. 그리고 기본소득 연구를 위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이베이,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들로부터 총 2400만달러 규모의 후원금을 유한 GiveDirectly가 있다. 많은 후원자들은 이 후원이 전적으로 박애정신에 기반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 연구가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연구를 위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12월 백악관과 페이스북의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가 아내를 위해 설립한 Chan Zuckerberg Initiatve가 주최한 빈곤퇴치 행사에서 Y Combinator의 수장인 Altman은 빈곤을 완화하는것에 대한 기본소득의 잠재력에 대해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연설은 곧 이 기본소득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어두운 질문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실리콘 밸리는 노동 없는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기술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전에도 농업혁명과 산업혁명 같이 기술 혁명을 겪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해 이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또 다른 혁명의 한복판에 있거나 혹은 최소한 그 시작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GiveDirectly는 자선단체일지 모르지만, 실리콘 밸리의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 GiveDirectly는 플랫폼이다. 낮은 간접비용으로 기부자와 수혜자를 연결하며 우수한 분석기능을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기존의 비영리단체를 지배하고 있는 과장과, 비싼 비용, 기존의 절차만 중요시 여기는 풍토를 경멸한다. 그리고 GiveDirectly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실에서 아이디어를 타진하고 친구들끼리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하는, 일종의 창업스토리도 가지고 있다.


GiveDirectly은 지금은 UCSD의 교수인 Paul Niehaus Michae Faye가 하버드 대학원생이었던 시절에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였다. 이 둘은 경제 개발에 대해 연구하면서 해외에서 현장실습도 병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Economics 101 lesson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수혜자들에겐 일반적인 구호단체가 주는 음식이나 그물침대, 다른 운동용품들보다 현금이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이었다. 배가고파도 그물침대를 먹을 수는 없다. 만약 마을이 풍토성 설사로 고통 받고 있다면 축구공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일단 그 일에 가까이서 보면 현금보다 적절한 다른 구호품을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그들에게 현금과 다른 구호물품을 선택하라고 묻는 것은 상당히 부적절한 질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선 마치 함정과 같은 질문이죠.“

 

그러나 그 당시에는, 주요 도시 이외에는 은행 인프라가 거의 혹은 전혀 없는 국가에서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엄청난 인력이 필요했으며, 강도와 부패와 같은 위험성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사하라 이남지역에서 값싼 선불제 휴대폰이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가나, 케냐, 나이지리아 인들은 남은 통화가능시간을 마치 화폐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보다폰과 영국의 국제개발부는 함께 M-Pesa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진짜 돈을 핸드폰을 통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케냐의 96%에 이르는 가구가 오늘날 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Faye Niehaus는 역시 대학생인 Rohit Wanchoo Jeremy Shapiro와 함께 미국에서 후원금을 모금하고 가난한 케냐인들에게 직접 돈을 보내줄 수 있는 웹사이트를 개설을 고려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현금을 직접 해외에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Faye 2008년 직접 결정을 내렸다. “학생일 때 시작한 스타트업에 불과했기에 우리는 이 아이디어가 실패하거나 잘 못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다음해 Faye는 여름방학동안 케냐의 작은 마을에 방문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현금을 제공했다.( 5000달러에 달하는 돈은 모두 4명의 동료들 사비를 털었다.) 이는 꽤 성공적이었고, 졸업한 해에 바로 허접하게나마 무작위 대조실험을 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평균적으로 500달러 정도를 받은 수혜자들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수혜자들의 자녀들이 하루 종일 굶을 확률이 42%정도 낮아 졌으며, 가정폭력 비율이 급감했고, 정신 건강은 개선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GiveDirectly는 실리콘 밸리와 젊은 자선 사업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페이스북의 창립자인 2명이 10만달러 단위의 기부를 하였다. 2012년 봄, Faye는 브루클린에서 Google.org에서 일하는 직원을 만났다. 그녀는 GiveDirectly를 좋게 보아서 캘리포니아 Mountin View에 위치한 구글 본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그리고 구글은 총 240만달러를 GiveDirectly에 기부하였다.

 

처음에, GiveDirectly는 평균적으로 총합 1000달러를 일 년에 3차례에 나누어서 수혜자에게 지급하였다. GiveDirectly의 현장요원은 케냐의 저소득 마을을 방문하여 간단한 자산테스트를 하였다.(예를 들어 가족이 초가지붕을 가졌는지 아닌지 같은) 현장요원들은 마을의 원로들에게 GiveDirectly의 목적을 설명하고 핸드폰을 주고 수혜자 가족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위해 다시 마을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GiveDirectly는 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통해 돈을 지급하였다.

 

10월의 안개 낀 날 GiveDirectly의 간부인 Joanna Macrae Ian Bassin GiveDirectly의 지원금을 받은 한 마을을 방문했다. 빅토리아 호수 유역의 번화한 산업도시인 Kisumu에서 출발하여 2차선 고속도로를 따라 가축과 자전거와 노점상이 많은 한 작은 교역도시인 Bondo를 거쳐 간선도로를 따라 농업지역을 지나 내륙지역으로 들어갔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2013년에 돈을 받았고, 기본소득 시범 마을보다 한눈에 보기에도 더 좋아보였다. 개척지에는 망고나무로 가득 차있었고, 암소는 건강했다. 외곽의 작은 호수에는 물고기를 잡기위한 그물망이 줄지어 있었다. 하지만 M-Pesa를 통해 돈을 전달하는 것에도 단점은 있었다. Anjelina Akoth Ngalo라는 늙은 여성은 관절 장애와 말라리아로 투병하고 있었다. 그녀는 약속한 3번이 아니라 처음 한 번의 지원금만을 받았다고 한다. 이웃 마을의 다른 여성에게 핸드폰을 넘겼고 그 여성이 나머지 돈을 빼갔다는 것이다. Ngalo는 돈을 되찾기 위해 마을 장로를 찾아갔지만 돈을 되찾지는 못했다. Ngalo는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있는데 일주일 예산이 겨우 5달러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심지어 전날에도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며, 말라리아 약도 다 떨어져간다고 한다.(수혜자의 약 1%미만이 도난, 범죄 같은 곤란에 빠진다고 한다.)

 

전원이 아니라 일부에게만 돈을 지급함으로써 GiveDirectly는 의도치 않게 깊숙이 뿌리내린 지역사회 부족공동체의 사회 구조를 왜곡시켰다. 근처에 있는 여러 마을의 길을 안내해주는 Nicolus Owuor Otin은 마치 GiveDirectly와 지역공동체간의 연락책처럼 활동하였다. 이런 이유로 다른 마을 사람들은 Otin이 누가 지원금을 받고 누가 받지 못할지를 결정한다고 여겼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집을 불태워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수혜자는 GiveDirectly의 지원금이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GiveDirectly가 처음 방문했을 때, 낡은 흙집에서 살던 Fredrick Omondi Auma는 알코올 중독이었으며, 아내에게도 버림받았었다. 그는 GiveDirectly의 지원금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택시사업을 하였다. 또 마을 중심지에서 비누와 파라핀 등을 파는 작은 사업도 시작했으며, 2마리의 소를 사서 지금은 새끼도 치고 있다. 또 그는 해안도시인 몸바사에서 이발소도 개업하였다. 그의 일주일 수입은 600실링에서 2500실링으로 급증하였다. 25달러에 달하는 돈으로 이 지역에선 상당한 수입이다. 그의 아내도 다시 돌아왔다. 심지어 술을 마시는 것도 줄이는데 성공했다

 

“저는 철근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멋진 구두를 신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해봤고, 사업을 운영하고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또 소를 가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었죠.”

 

잘 알려진 원조의 사례는 사실 이상한 형태를 띠고있다. PlayPumps – 아이들이 놀면서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있게 설계된 회전목마형 기구 는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성을 조금밖에 향상 시키지 못했고, 암소 사육 프로그램은 환경에 부적합한 동물들을 수혜자들에게 떠넘겼을 뿐이다. 2015년 세계 은행의 한 연구에 따르면 기술 훈련과 그라민 은행 같은 소액금융은 특히 프로그램 비용과 비교할 때 빈곤이나 안정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나타났다.



 

케냐 서부의 모든 마을에 걸쳐 불필요한 물건에 엄청나게 많은 원조자금이 낭비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마을 주민들은 과도하게 많은 드럼통과 물 탱크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원조단체들이 계속해서 기부했기 때문이다. Toms에는 신발과 의류 시장이 크게 열린다. NGO 직원들이 계속해서 신발과 의류를 주민들에게 뿌리고 그냥 돌아서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현금을 마련한다. 그리고 마을을 방문한 원조 단체 중 그 누구도 마을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

 

예를 들어, 시범 사업 마을에 Caroline Akinyi Odhiambo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노동자인 남편 Jack2명의 아이들과 함께 마을 외곽의 진흙집에서 살고 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가장 비싼 재산은 500실링짜리 닭이었다. 그녀의 가족은 계속해서 기아에 시달렸다. GiveDirectly의 방문 이전에도 3개의 다른 원조단체가 마을을 방문했지만, 그녀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한 단체는 마을 사람들에게 학비를 지원해주기로 했지만, 그녀의 아이들은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더 최악이었던 것은 대부분의 이런 원조사업들에 대한 사후 영향 평가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하는지 혹은 더 효과적인 다른 지원 방법이 있었는지 따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이 지원금을 그냥 현금으로 주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원조의 대다수(94%)는 비 현금이다. 기부자들의 거부감이 그 원인인데, 미국의 부유층이나, 영국의 귀족들 혹은 일본의 사업가들에게 그들의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냥 주고 알아서 쓰도록 하자고 설득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의 공중 보건 및 개발 전문가 Amanda Glassman은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이 사람들에겐 복지 의존 현상에 대한 걱정이 있습니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라.’ 뭐 이런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의구심은 강력합니다. 돈을 공짜로 받기 시작하면, 그저 술을 마시고 집에서 뒹굴거릴 것 같다는 의구심이죠.”

 

현금지원은 원조시장에서도 그리 환영 받지 못한다. 미국의 납세자들은 그들의 세금으로 가난한 국가의 어린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혹은 학생들에게 백신을 놓아주는 것에 대해서는 만족을 표하겠지만, 가난하고 불안정한 국가에 돈을 뿌리는 것에 대해선 엄청난 불만을 가질 것이 뻔하다. 어린 아이의 입에 알약을 넣어주는 그림은 꽤 그럴듯하고 또 매력적이다.

 

제도적 관성도 또 다른 원인이다. “원조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금을 지원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도 꽤 있죠. 그러나 원조사업의 세계에선 이런 일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업의 구조의 문제도 있고 상부에서 어떤 것을 원하느냐의 문제도 있죠. 대부분의 단체들은 특정한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가 건강이 될 수도 있고, 교육이 될 수도 있겠죠. 그러나 현금을 지원하는 것은 수혜자들에게 어떠한 목표를 추구할지에 대한 선택권을 넘기는 것입니다.”

 

게다가 현금지원은 원조 단체의 직원들과 NGO들에게 때때로는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할 위험이 있다. 이에 대해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Justin Sandefur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비료 대신에 현금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진짜 어려운 것은 라이베리아 정부의 교육예산 전체를 다 합친 것 보다 훨씬 큰 규모의 예산을 집행하는 미국의 USAID(미국 국제 개발처)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그 예산을 그냥 라이베리아 국민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이죠. 이것이 진짜 어려운 문제입니다.”  Faye는 반쯤 농담 섞인 말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만약 현금지원이 원조사업의 대세가 된다면 원조 단체들은 본인들 직원부터 다 해고해야 할 것입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추정에 따르면 최근 세계 빈곤 격차는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빈곤선 위로 올라가게 하는데 얼마가 필요한가) 660억달러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미국인들이 매년 로또를 사는 금액과 비슷하며, 전 세계의 대외 원조 자금의 절반에 불과하다.

 

시범사업 마을에서, 주민들은 현금지원 프로그램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그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그들의 삶은 앞으로 12년간 얼마나 달라질지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종종 기본적인 소득이 보장된 세계에서는 사회적 안전망이 너무 촘촘해져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국가가 아닌 부유한 국가에서의 노동자들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이 보장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을 것이다.

 

여기 시범사업 마을에는 단순한 생존과 그동안 가난으로 누리지 못했던 기본적인 욕구에만 충실한 사람들이 있다. 그 전에 원조단체로부터 학비 지원을 받지 못했던 Odhiambo는 집의 지붕을 철제로 바꾸려 준비중이며 지참금 또한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또 마을 주민인 Pamela Aooko Odero는 기아를 겪고 있었는데, 8명 가족의 생활비로 일주일에 고작 500~1000실링 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금 지원을 받게 된 지금도 돈이 생기면 음식을 사는데 모든 돈을 쓴다.

 

그러나 사업계획을 세운 다른 마을 주민들도 많다. 미망인 자매인 Margaret Aloma AbagiMary Abonyo Abagi는 친구들과 함께 작은 은행을 만들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이 집에서 일하고 있는 Charles Omari Ager라는 소년은 돈이 들어왔다는 문자를 받은 직후 전원을 끄고 비닐봉지에 넣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고 자매의 염소 떼들을 몰며 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GiveDirectly의 직원이 휴대폰을 확인하게 했고 돈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와 행복하다!” 그는 그날로 염소를 구매하였다. 이제 본인의 재산이 생긴 것이다.

 

Erick Odhiambo Madoho는 돈을 받은 직후 가까운 고속도로 갔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타고 빅토리아 호수 근처의 도시로 나가 M-Pesa ATM에서 모바일 머니를 실링으로 환전하였다. 그는 빅토리아 호수의 틸라피아 물고기를 잡기위한 그물을 만들기 위해 이 돈으로 그물 줄을 구매하였다.

 

그물을 다 엮은 후 그는 낚시배를 빌리고 노동자를 고용할 계획이라 하였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모든 비용을 제외하고 운이 좋은 날에는 최대 2000실링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에게 왜 그 전에는 돈을 모아 그물을 사지 않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고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럴 수 없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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