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vengers
무더웠던 10월의 어느 주말, 역대 최다 규모의 마블의 슈퍼 히어로와 멤버들이 아틀란타의 외각에서 집결했다. 헐크를 연기한 마크 러팔로, 그루트의 목소리를 연기한 빈 디젤, 아이언 맨 그 자체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비롯하여 스칼렛 요한슨, 기네스 펠트로, 제레미 레너 등 마블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총 83명의 배우들과 만화책 작가이자, 아이언 맨, 스파이더 맨, 닥터 스트레인지, 판타스틱 포 그리고 엑스 맨 영화에 참여한 스탠 리까지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몸값도 비싼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바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프랜차이즈의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 아이언 맨으로 시작한 마블 스튜디오는 10년동안 17개 영화로 전세계 박스오피스 수익 130억 달러 이상을 올렸으며, 향후 2년간 5편의 영화가 출격을 대기하고 있다.
역사적인 성공을 거둔 MCU는 부진에 빠졌던 한 배우를 최고의 스타로 올려 놓았으며(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고(톰 히들스턴), 독립영화의 스타(베네딕트 컴베비치와 틸다 스윈튼)에서부터 할리우드의 아이콘(앤소니 호빈스, 로버트 레드포드)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배우들이 모였고, 크리스(Chris)라는 이름을 가진 3명의 배우(햄스워스, 에반스, 프랫) 역시 어깨를 나란히 했다. 행사 당일 모인 배우들의 면면이 워낙 쟁쟁해서, 앤트맨에 출현했던 마이클 더글라스는 이 날, 배우들의 사인을 모으고 다녔다는 후문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강력한 히어로들을 모은 것은 닉 퓨리 역의 사뮤엘 잭슨도 아니었고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도 아니었다. 히어로들을 모은 것은 바로 케빈 파이기. 항상 검은 야구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만년 언더독이었던 마블 B급 캐릭터들을 모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제국을 구축한 것이 바로 케빈 파이기이다.
케빈 파이기
마블의 방대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크로스 오버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를 제작하는 파이기의 혁신적인 접근법은 작게는 영화 제작 방식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크게는 문화계 전체에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 일으켰다.
스페이스 오페라를 다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지구에 기반을 둔 ‘어벤저스’ 혹은 마법을 다루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와칸다의 국왕이 주인공인 ‘블랙 팬서’가 함께 등장하는 세계를 그리기 위해서는 한편의 독립적인 영화로는 부족하다.
‘저스티스 리그’를 추진하고 있는 워너 브로스와 같은 다른 스튜디오 역시 나름의 통일된 세계관을 가진 프랜차이즈를 시도했으나 여러 차례 실패를 맛 보았다. 왜 다른 스튜디오들은 마블과 같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조 루소(어벤저스3, 어벤저스4의 감독)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에겐 케빈이 없었으니까!”
파이기가 등장하기 전, 마블 스튜디오는 독자적으로 영화 한편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1993년 설립된 마블 필름은 마블의 캐릭터들을 다른 스튜디오에 라이센스 주기에 바빴다. 예를 들어, MCU이전 엄청난 히트를 쳤던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는 소니의 컬럼비아 픽쳐스에서 제작했다.
소니에서 제작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파이기는 마블의 캐릭터들을 이용하여 직접 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팀의 일원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는 엄청나게 리스크가 큰 프로젝트였다. 모든 상황은 불안정했고,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파이기는 이때의 불안한 느낌을 잊지 않고 있다. 어느 기자회견에서 그는 마블의 모든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불안에 떤다고 고백했다. “이 영화가 모든 것을 망쳐버리면 어떻게 하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MCU가 10년이 넘어가면서 이제 사람들은 새로운 마블 영화가 개봉하면 이런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더 멋진 영화가 나올까?”
2019년으로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어벤져스4’를 마지막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크로스오버 프렌차이즈가 일단락되면서 일부 캐릭터들이 하차하게 되었다. 크리스 에반스(캡틴 아메리카), 마크 러팔로(헐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아이언 맨), 스칼렛 요한슨(블랙 위도우), 크리스 햄스워스(토르), 제레미 레너(호크아이)가 아마 하차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즈니는 MCU가 향후 최소 20년간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풍부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장담한다. 아직까지 극비로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이미 흑인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제작한다고 밝혔다. 물론 현재로서는 MCU 팬들은 그저 파이기만 믿으면 될 것이다.
이제 겨우 44세에 불과한 파이기를 마블 내부에서 부르는 별명은 바로 ‘Fanboy’. 행사장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이렇게 말했다. “파이기는 ‘Fanboy’ 그자체!”라고 말이다.
The Fanboy
케빈 파이기의 사무실은 월드 디즈니 스튜디오의 Frangk G. Wells 빌딩 2층에 자리잡고 있다. 벽에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색 모자가 선반 위에 놓여 있으며, 벽과 테이블은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와 장면들을 재현한 피규어와 장식물들로 가득하다. 그가 만들어 낸 것은 현대의 신화이다.
파이기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닌데, 본인의 삶이 그리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한다. 언젠가 이를 놓고, 마크 러팔로는 파이기의 성공 원인이 바로 이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배우)와 같이 위대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떠벌릴 필요가 없죠.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같은 사람들이 자기가 얼마나 뛰어난지 떠벌리고 다니는 것 본적 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위대한 배우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파이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저지의 웨스트 필드에서 성장한 파이기는 어린시절 각종 블록버스터에 심취해 있었다. 슈퍼맨, 스타워즈, 스타트렉, 인디아나 존스, 백투더 퓨쳐와 같은 영화들에 빠져있던 파이기는 학교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언제나 영화관을 찾았다고 한다. 물론 코믹스도 좋아하긴 했지만, 가장 좋아했던 것이 바로 영화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성적이 조금 올랐고, 그 덕분에 남가주대(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그의 꿈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기회는 곧 찾아왔다. 대학 인턴쉽 기간 중 슈퍼맨의 감독 리차드 도너와 프로듀서인 그의 아내 로렌 쉴러 도너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도너 부부는 각각 풀타임 어시스턴트를 구하고 있었고, 파이기의 선택은 분명했다. 처음에는 그의 영웅이었던 리차드 도너 밑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결국 프로듀서인 쉴러 도너 밑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를 계기로 파이기는 프로듀서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다.
리차드 도너와 쉴러 도너
당시 쉴러 도너는 마블 캐릭터를 다루고 있는 X맨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다. 어느날 회의자리에서 파이기는 울버린 역을 맡은 휴 잭맨의 헤어 스타일을 만화 캐릭터 그대로 뾰족하게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쉴러 도너와 당시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 아비 아라드는 탐탁치 않아 했지만, 파이기의 집요한 주장에 결국 코믹북에 나온 그대로 다소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을 승인했다.
파이기의 입장은 이랬다. “그 멍청한 헤어스타일이 바로 울버린이다!” 이 경험은 파이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우스워 보일지는 모르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대중들이 이를 싫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코믹북의 요소는 사실 우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파이기의 열정과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곧 아라드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아라드는 파이기를 스카웃하여 마블의 캐릭터 라이센싱 사업을 관리하는 역할을 주었고, 덕분에 파이기는 마블의 캐릭터를 이용한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처럼 성공작도 있었지만, 데어데블, 리안 감독의 헐크와 퍼니셔는 흥행에 실패했다. 파이기는 영화제작 과정에서 많은 의견을 냈지만, 대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영화는 끔찍한 실패를 겪었다. 파이기의 주장은 간단했다.
“언제나 정답은 코믹북 안에 있다!”
한편 그때, 아라드는 독자적으로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할리우드에 다시 히어로물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비록 마블의 최고 인기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의 트릴로지가 마지막에 망하면서 일부 사람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오늘날 파이기는 그 당시의 상황을 별 것 아닌 것처럼 표현하기는 하지만, 당시 마블 스튜디오는 MCU의 첫번째 작품에 사실상 모든 것을 건 상태였다. 영화와 캐릭터 판권을 담보로 자금을 확보한 파이기와 아라드는 아이언맨의 파브르 감독, 인크레더블 헐크의 루이스 레테리어 감독, 그리고 앤트맨의 에드거 라이트 감독을 선임했다. (이중 파브르만이 계속해서 MCU에 참여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아이언맨'은 다른 프랜차이즈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영화였지만, 현재 사람들은 이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위험한 도박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덕분에 마블은 재정적 안정성과 업계에서 신뢰를 획득했다. 이 말은 즉, 후속 작품들을 파이기의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한편, 마블 스튜디오의 위상이 올라가자 CEO였던 아라드는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며 아이언맨이 개봉되기 직전 파이기를 자신의 후임으로 임명하고 사임했다.
단 33살의 나이에 파이기는 드림웍스 이후 가장 파급력이 큰 독립 스튜디오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유니버스의 탄생
마블이 인디 스튜디오로 운영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디즈니는 기존의 가족과 소녀를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층을 넓히기 위해 ‘tentpole(여름용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을 위한 프로듀서를 물색하고 있었다. 남성 중심의 팬덤이 막강한 마블은 이런 디즈니의 목표에 매우 적합한 대상이었다. 2009년 디즈니는 40억달러에 마블을 인수했다.
디즈니가 인수한 후에도, 마블은 흔들림 없이 계획을 진행시켜 나갔다. 4년 전까지도, 파이기는 이전에 사용하던 사무실들을 계속 사용했다. 연 만드는 회사와 같은 빌딩을 쓰는 LA외각의 작은 빌딩, 위층에 벤츠 딜러샵이 있는 비버리 힐즈의 사무실과 맨하튼 비치의 사무실이었다. 심지어 첫번째 어벤저스가 대성공을 거둔 후에도, 이 초라한 사무실을 계속해서 사용했던 것이다.
이중 한 사무실의 벽에는 마블의 아티스트 에드 해닝언과 조 루빈스타인의 1988년 작품이 크게 걸려 있다. 제일 상단에 크게 MARVEL UNIVERSE라는 엠블럼이 새겨져 있고 그 아래로 각각 다른 스토리 라인에 출현하는 수백명의 마블 캐릭터가 그려진 그림이다.
파이기는 마블의 수많은 슈퍼히어로들과 다양한 스토리를 함께 엮어낸다면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다시 말하면 사무실의 벽에 걸려있는 포스터 그림을 현실로 가져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언맨은 개봉 첫 주에만 98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보답 받았다. 하지만 이 엄청난 성공보다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은 따로 있었다.
영화 말미에 사뮤엘 잭슨이 마블 유니버스에서 대테러 조직 SHIELD의 국장인 닉 퓨리를 연기하며 까메오로 등장했다. 원래 닉 퓨리의 등장은 일종의 이스터 에그에 불과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 등장한 것도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마블 코믹스의 팬들 뿐 아니라 영화관에서 처음 본 일반관객들도 닉 퓨리의 등장에 엄청난 환호를 보내는 것을 보면서 파이기는 여러 영웅들이 등장하는 크로스 오버 세계관에 대한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파이기의 이 웅대한 계획의 초창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었다.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크로스 오버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비중이 바로 그것이었다. A영화에서 주인공인 B캐릭터가 C영화에서는 카메오나 조연으로 등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뮤엘 잭슨은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9편의 후속작에 출연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판타스틱 4에 출연했던 크리스 에반스
어벤저스 팀의 리더를 맡게 될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반스와 장기 계약을 맺는 것도 힘든 과정을 겪었다. 크리스 에반스는 이미 다른 마블의 판타스틱4에서 조니 스톰 역으로 출연했었고, 다른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해 슈퍼 히어로 영화에 장기 계약을 맺는 것을 꺼려했다. 주말을 통째로 보내며 고민하던 에반스는 결국 마블 영화 6편에 대한 출연 계약에 사인했다.
그리고 토르 역을 맡은 햄스워스도 마침내 합류를 결정하면서 파이기의 웅대한 계획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물론 햄스워스가 합류를 거절한다고 해서 마블의 계획이 틀어지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이미 아이언맨이 박스오피스 성적 8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순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블 스튜디오의 하이라이트는 좀 더 뒤에 찾아왔다. 2012년 로마에서 말이다. 이 날, ‘어벤져스’ 개봉을 축하하는 기자회견 ‘투어’가 열렸고, 총출동했던 마블 관계자와 배우들은 파이기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바로 그 때 진정으로 깨달은 것이다.
이 날, 파이기는 자신의 웅대한 계획을 공개했다. 마블 코믹스의 모든 것을 끌어 모아 ‘마블 유니버스’를 만든다는 계획 말이다. 아이언 맨, 인크레더블 헐크, 캡틴 아메리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파이기는 2012년 개봉한 어벤져스를 기점으로 향후 2년 동안 총 15편의 마블 유니버스 작품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이 계획에는 영화와 티비 시리즈가 모두 망라되어 있다.
'# 감 상 문 > #2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국의 책사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0) | 2017.12.13 |
---|---|
[호모 노마드 - 유목하는 인간] 미래에 대한 불길한 전망 (0) | 2017.09.14 |
고프로 히어로 5에 잘 맞는 악세사리 BEST 15 (0) | 2017.08.27 |
플랫폼의 변화 - 모바일 그 다음 세대는 어떻게 달라질까? (0) | 2017.08.20 |
가성비 좋게 카메라 외장 플래시 효과 내는 방법 (2) | 2017.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