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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지금의 세계가 자크 아탈리의 말대로 ‘노마드화’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신자유주의의 가속화에 따라 기업들은 글로벌화를 추진하면서 전 세계 곳곳으로 진출하였고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아탈리가 구분한대로 자발적 노마드, 비자발적 노마드 그리고 정착민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과거의 유목민들이 정주민들이 정착한 곳을 돌아다니면서 재화와 문화를 유통하였다면 오늘날은 기업들이 그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가올 미래사회에서는 아탈리의 말대로 정주민이 아니라 유목민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와 같은 미래가 아탈리의 말대로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탈리는 ‘하이퍼 노마드’ 즉, 전문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한군데에 정착할 필요 없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직장을 옮기고, 주거지도 옮겨 다닐 수 있는 이들 계층이 세계화된 기업들의 필요에 더불어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는데 사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수많은 비자발적인 노마드의 양산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문직종들이 이처럼 자유롭게 기업을 옮겨 다니면서 유목민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발달이 이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시기처럼 대규모의 숙련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들은 기계나 컴퓨터로 대체되고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극 소수의 영역과 단순 반복작업만을 필요로 하는 나머지 영역으로 일자리가 분화되었고 이에 따라 직업군도 점점 소수의 전문직과 다수의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기업들은 과거 정규직이 차지하고 있던 일자리를 ‘아웃 소싱’등 첨단 관리기법들을 도입하거나 아예 노동력이 저렴한 해외로 일자리를 이전시켜 이익의 극대화를 도모한다


이와 같은 경향의 모습이 바로 세계화를 표방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이다. 그 결과는 자본이익의 확대 재생산과 이에 따른 부의 불균형문제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우리 시대 정착민의 제국인 미국이 시장과 종교 민주주의라는 노마디즘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 아탈리는 예측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분석도 가능하다.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배운 것처럼 정부가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놓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장 권력은 정치권력을 사유화하여 더욱더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다. 


미국 의회에 가해지는 로비들을 통해서 미 제국은 점점 더 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해간다 물론, 시장과 기업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지금도 제 3국에서 무역분쟁이 발생하면 유럽의 기업들은 자국 정부보다는 미국 의회에 로비를 하는 것을 선택한다. 


단지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각국의 글로벌 기업들도 지역정부를 장악하여 시장에 대한 지배권을 점점 더 광범위하게 장악해 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자발적 노마드와 비자발적 노마드의 확장이다. 


이 둘은 결코 때어 놓을 수가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부는 소수의 자발적 노마드들에게 집중될 것이며 다수의 비 자발적 노마드들은 빈곤에 빠질 것이다. 그렇다면 아탈리의 말처럼 민주주의가 이를 구원할  수 있을까?




미래 사회와 노마드




그럴 수 없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시민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유지된다. 관심과 노력은 경제적 안정에서만 나올 수 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발달했던 이유, 2차대전이후 각국에서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확장되고 한국에서 90년대 이후 민주주의가 정착했던 것 역시 중산층의 형성에 따라 정치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시민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허나 신 자유주의는 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심 계층인 중산층의 파괴를 가져온다. 비정규직의 확산, 생산시설의 해외이전 등으로 중산층이 몰락하고 기업과 자본이 정치를 장악할 동안 비자발적 노마드들은 이를 저지할 힘을 잃어간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는 결코 아탈리가 예측한 것처럼 민주주의가 결코 미래세계의 질서로 나타나지는 못할 것이다. 


나탈리는 노마드가 미래세계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전문직종 등 자발적인 노마드들을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물론 이들의 삶은 언제나 풍요로운 자들이 그랬듯이 자유로울 것이며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탈리의 예측에서 단순한 누락인지 고의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비자발적인 노마드들에 대한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 기업들의 생산공장으로 전락한 개발도상국가들의 국민들은 그곳에서 비정규직으로 머물거나 신세계로 생각하는 선진국으로 넘어오겠지만 그곳에서도 단순한 서비스직종을 담당하며 여전히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선진국의 국민들이라고 그리 다르진 않을 것이다. 소수는 전문성을 가진 자발적 노마드가 되겠지만 나머지 다수는 언제라도 다른 국가의 아웃소싱 인력으로 대체될 수 있는 비정규직이 되어 삶에 안정을 갖지 못하는 비자발적 노마드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풍요로운 삶,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자발적 노마드를 선택하고 싶다. 우리 앞에 다가올 세상에서는 이런 자발적 노마드를 원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유목정신으로 포장되어 있는 ‘노마드’를 선택하기에는 이와 같은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질서가 거슬린다. 


물론,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와 같은 자리를 쟁취하고 유지할 자신도 조금 적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추세를 거부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는 다른 아이디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아탈리의 분류에 따르면 그래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체제의 수호자 정착민을 선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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