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 미국처럼 다른 모든 국가에게 정식으로 승인 받고, UN에 가입하면 국가인가? 아니면 코소보처럼 거의 모든 국가에게 승인을 받았지만, UN에 가입되지 않은 국가는? 혹은 대만처럼 독자적인 정부와 군대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원칙에 의해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국가는? 그리고 카탈루냐, 쿠르디스탄처럼 주민투표를 통해 분리독립을 희망하는 지역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국가라고 하면, 국민, 주권, 영토를 가진 정치적 영토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국가는 정식으로 지도에 일정한 영역을 차지하며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파고들면, 이 같은 국가의 정의는 단순히 지도에 줄을 긋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국가가 UN에 가입하면 주권을 인정받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현재 UN에는 총 193개의 회원국이 함께하고 있지만, 1945년 창립 당시에는 회원국의 숫자가 지금의 1/4에 불과했다. 현재 UN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회원국은 1950~60년대를 거치면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독립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가 혹은 90년대 이후 소련과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면서 새로 독립한 공화국들이다.
2000년 이후 UN에 새로 가입한 국가는 단 2개. 동티모르와 남수단 뿐이다. 새로운 국가가 더 이상 탄생하지 않는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대부분은 법적, 정치적인 문제이다.
몬테비데오 회의
1933년 몬테비데오 협정에서 국제사회는 현대적인 국가의 정의에 대한 원칙에 합의했다. 현대적인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안정된 인구, 명확한 영토, 주권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정부를 필요로 했다.
몬테비데오 협정은 제국주의 시대 그리고 식민주의 시대가 막 해체되기 시작한 시점에 이루어졌으니,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어떤 예견이 담겨 있었다고 해도 그리 큰 비약은 아닐 것이다.
식민제국이 해체되면 새롭게 등장할 신생독립국가들을 위한 일종의 법정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몬테비데오 협정은 20세기 독립을 쟁취한 대부분의 식민지들이 국제사회로부터 정식으로 승인 받을 수 있었던 법적 근거였다.
분리독립 운동
2010년대 들면서 기존과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많은 분리주의 운동이 등장하고, 또 여전히 정식으로 승인 받지 못하고 있는 국가도 있다. 이들은 대부분 몬테비데오 협정이 정한 조건을 최소한 하나 이상을 만족하고 있다. 안정적인 인구를 보유하거나 혹은 명확한 영토를 가지고 있기도 한다. 또 다른 국가들과 독자적으로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하는 국가도 있다. 물론 대만이다. 명확한 영토가 있으며, 안정된 인구와 다른 국가와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부가 존재한다. 그러나 전 세계의 대부분 국가는 대만을 정식으로 승인하지 않고 있으며, UN에 가입도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왜 21세기에 새로운 국가가 더 이상 탄생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왜 독립을 주장해도 다른 국가에서 인정해주지 않는지 말이다.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려면 기존의 국가에서 영토를 양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기존의 주권국가는 자신의 영토를 양도하기를 매우 꺼려한다. 물론 다른 국가들 역시 독립하여 영토를 취득한 신생국가에 대하여 기존 종주국(Parent State)의 동의 없이 국가로 승인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영토를 양도해주어야 하는 모국의 동의 없이 신생국가를 승인한다면, 주권에 관한 기존의 관념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야기할 수 있으며, 위험한 선례를 남기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자국의 의사와 관계없이 제3자가 신생국에 영토를 넘기는 관행을 누가 스타트 끊기를 원하겠는가?
분리독립 추진 지역
자국 내에 이미 분리독립 운동이 퍼지고 있는 수십개의 국가들에게 이는 단순한 학문적인 질문이 아니다. 가장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카탈루냐 독립운동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한 스페인이 2008년 세르비아에서 독립한 코소보를 승인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코소보를 인정했지만, UN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은 코소보를 승인하지 않았다. 때문에 코소보는 UN에도 가입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국제법상으로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코소보의 가장 큰 문제는 종주국이었던 세르비아가 코소보의 독립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카탈루냐와 쿠르디스탄 주민들의 자결권 행사가 왜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카탈루냐와 쿠르디스탄은 모두 독립문제에 대해서 지역내에서는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스페인과 이라크라는 중앙정부의 필사적인 반대로 인해 독립문제가 진척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과 이라크가 카탈루냐와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반대하는 것은 이들이 독립하길 원하는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경제 문제.
그러나 이 말이 곧 신생 독립국가가 경제적으로 자립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독립을 주장하자, 종주국 뿐만 아니라 인접국가들 역시 분명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카탈루냐의 경우 EU 구성원들이 반대하고 있으며, 쿠르디스탄의 경우 인접국가인 터키, 이란, 시리아가 반대하고 있다.
쿠르드인 거주지역
자결권과 주권
그래서 이 같은 사례에서 자결권은 영토보전권과 주권에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결권을 주장하며 독립을 선포할 수는 있지만, 종주국이 해당 영토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자결권이 주권국가 선포에 이르지는 못하는 상태로 결말을 맞게 될 것이다.
현재 카탈루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카탈루냐의 자치권마저 회수했으며, 카탈루냐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한 독립 주민투표는 스페인의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1945년 이후 UN에 가입한 많은 국가들에게 적용되었던 원칙은 카탈루냐와 쿠르디스탄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독립을 한 것은 종주국이 독립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독립국들은 많은 희생을 치루며 싸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될 때는 평화적으로 국경이 재정립되었다. 유고 연방의 해체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그리고 마케도니아)와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동티모르, 수단으로부터 독립한 남수단의 경우 그 과정에서 종주국과의 독립협상이 이루어졌다.
위와 같이 어떠한 경우로든 종주국의 동의가 없다면 새로운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실 1945년 이래로, 1971년 방글라데시 그리고 1990년대 유고연방의 붕괴로 등장한 독립국가들은 사실상 일방적인 독립선언과 그에 뒤따른 전쟁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독립을 장려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시스템 안에서 독립을 원하는 민족이나 지역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모델은 바로 현 체재 내에서 더 큰 자치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가장 부유한 지역인 베네토와 롬바르디는 곧 더 큰 자치권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고 한다. 물론 투표 결과에 따른 강제력은 없지만, 이탈리아의 중앙정부가 주민투표 결과를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탈루냐는 이미 베네토와 롬바르디가 원하던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더 큰 주권을 바라다가 가지고 있던 자치권 마저 박탈당할 처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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