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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역사 (1) - 인터넷의 기원에 대한 논란

category # 역 사 2017. 9. 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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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기원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이며, 우리가 무엇을 정말로 필요로 하면, 반드시 인류는 그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인터넷의 개발이 정확이 이 같은 상황이었다. 인터넷은 언젠가는 개발될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인류는 언제나 거리와 시간의 제약을 넘어서 상호 소통하려는 매우 깊은 열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오래된 의사 소통 도구인 언어는 초기부터 인류의 진화와 그 궤를 같이해 왔다. 인류는 의사소통의 형태로서 글쓰기를 개발했고, , 파피루스, 나무, 동굴 벽 그리고 가능한 모든 곳에 우리의 역사와 생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상형문자상형문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인류로서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일 것이다. 인류의 본질은 소통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교통수단이 발전하기 전, 우리는 거리를 뛰어넘어 소통할 방법을 모색했다. 인류가 사용했던 방법은 전서구를 이용하거나, 봉화 혹은 연 같은 것을 띄워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교통수단이 발전하고, 산업 혁명을 거쳐 정보화 시대가 다가오면서,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19세기의 위대한 발명품인 전기와 전보가 없었다면, 아마 인터넷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능성은 낮지만, 라디오와 텔레비전 같은 표준 전자 미디어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인터넷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존의 통신 및 방송 기술은 인터넷의 발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정이지만, 이 글에서는 모든 미디어의 발전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이 발명되는데 필요한 수많은 업적을 남긴 마르코니, 알렉산더 그레이험 벨, 테슬라와 같은 위대한 개척자들 이야기 역시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자 네트워크의 발전과정에 포커스를 맞추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인터넷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보전보



전자 네트워크의 시작은 바로 전화 혹은 전보 시스템이었다. 이 통신망의 시작은 역사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1844년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에 첫번째 통신망이 가설되었으며, 1858년에는 대서양 횡단 케이블이 설치되었고, 최초 가설 17년만에 전신망이 미국 전역을 커버하게 되었다.

 

1960년대 마셜 맥루한은 고전이 된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새롭게 등장해 막 태동하는 시기를 다루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것이 인쇄술이든, 자동차 혹은 TV든간에 개발하는 동안에는 많은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초기 자동차를 말이 없는 마차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의 역할을 말과 마차와 동일하게 생각했다. 아무도 비행기, 장거리 운송 트럭, 고속도로와 자가용이 만들어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과거 마차처럼 시내 나들이를 갈 때 사용할 새로운 도구 정도로 이해했던 것이다.

 

초기 자동차초기 자동차


전화기의 초창기에도 비슷한 종류의 오해가 있었다. 알렉산더 그래이엄 벨은 전화기로 음악 방송을 하려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전화기를 일방통행성격을 가진 일종의 방송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모르스 부호를 통해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1863년에도, 우리는 이 새로운 인프라 스트럭쳐가 미래에 어떻게 쓰일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1863년 미래학자이자, 역사상 가장 뛰어난 SF 작가였던 쥘 베른은 이런 글을 썼다.

 

사진 전송기는 어떤 글, 사인 혹은 환상도 아주 멀리 보낼 수 있다. 모든 가정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래에 어떤 것이 가능해 질지를 완벽하게 설명해 주는 좋은 설명이었다. 쥘 베른은 달 탐사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말하는 등, 실제로 현실로 이루어진 많은 것들에 대해 예언한 사람이었다.

 

쥘 베른이 이 글을 썼던 1863년의 사람들은 전보 시스템을 이용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상상하지도 못했으며, “전화라는 말 자체도 나오기 전이었다. 이후, 전화를 통해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꽤 오랜시간동안 통신망의 주요 목적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다 1980년대 들어, 네트워크의 새로운 활용 방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등장한지 150년 만에, 네트워크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광범위한 연결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대륙과 대륙을 넘어 저 넓은 바다 아래에도 엄청난 크기와 길이를 자랑하는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으며, 인공위성과 무선을 통해서도 이 세상 거의 모든 전자기기가 연결되어 있다.

 

해저 케이블해저 케이블


이 통신망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생각들, 가장 대담한 상상들, 우리의 금융 거래 정보와 뉴스, 음악,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공유하고 전달하고 소비하고 있다.

 

통신망(네트워크)는 인터넷의 시대 이전에도 있었다. 처음에는 전보망이었고, 어느 시기에는 주로 목소리를 전달하던 전화망, 그리고 주로 텍스트에 기반한 정보를 전달하는 초기 인터넷망에서 오늘날에는, 정보, 통신, 인터넷 전자 상거래, 영화, 사진, 음악, 메시지, 음성 메시지 그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오늘날의 인터넷 네트워크로 발전하게 되었다



인터넷이란 무엇일까?



인터넷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 인터넷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만가지의 정의가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간단한 정의는 상호 연결된 네트워크와 컴퓨터의 전 세계적 시스템일 것이다.

 

여기에 기술적인 설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정의에 전송 제어 프로토콜(Transmission Control Protocol)-인터넷 프로토콜(Internet-Protocol) – TCP/IP"라는 용어를 더하기도 한다.

 

아르파넷, 알파넷, ARPAnetARPAnet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인터넷의 기원은 펜타곤에 있는 Arpanet이라는 군용 컴퓨터일 것이다. Arpanet은 냉전시기 핵공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정의에 부합하는 인터넷이 발명된 곳과 발명한 시점은 펜타곤도, 1969년도 아니다.

 


1969년 미 국방부에서 시작된 Arpanet 프로젝트는 훗날(1970년대)에 인터넷 프로토콜을 탄생시켰지만, 1969년은 인터넷의 시작이 아니었다. 핵 공격에서 살아남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과 전 세계적인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은 Arpanet의 목적이 아니었다.

 

펜타곤 고등 연구 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 네트워크 이른바 ARPAnet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밥 테일러(Bob Taylor)ARPAnet군사적 목적이 아니라 과학적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핵 공격 이론은 ARPAnet의 구상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의 그 어떤 것도 펜타곤의 1969년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ARPAnet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밥 테일러가 고용했던 래리 로버트는 ARPAnet은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거나, 통신을 가능하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ARPAnet은 시분할(Time-Sharing)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시분할은 연구기관으로 하여금, 엄청난 계산을 필요로 할 때, 서로의 컴퓨팅 파워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1969ARPAnet이 한 가장 중요한 일은 패킷 교환이라 불리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ARPAnet이 설립되기 전인 1965년 도날드 데이비스라는 한 영국인이 영국에서 ARPAnet과 비슷한 NPL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시설을 제안했다. 미국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패킷 교환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ARPAnet이 채택한 것은 영국 버전이었다.

 

Packet Switching, 패킷 교환패킷 교환


그런데, 알파넷 역시 패킷 교환을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래리 로버트는 사람들간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은 과학 컴퓨터 네트워크의 중요한 동기는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동시에 계산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가 실제로 작동하지는 않았다. 초기 컴퓨터들은 다양한 운영체제, 서로 다른 버전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고, 이 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의 컴퓨터를 사용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문제는 점점 해결되었다. 미니 컴퓨터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시분할의 경제성이 점점 커졌다.

 

그러므로 ARPAnet의 초기 목적은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들이 있었고, 이 발견이 첫 번째 인터넷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는 이메일과 패킷 교환 구현 및 TCP/IP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TCP/IP



TCCP/IPtCP/IP


TCP/IP는 인터넷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기초에 해당한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Steve Crocker가 이끄는 Networking Group에서 개발한 TCP/IPARPAnet이 수행한 컴퓨터 간의 초기 통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Networking Group의 멤버였던 Vinton Cerf 1968년에서 1972년 사이 UCLA에서 초기 ARPAnet 프로토콜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1972년 말, 스탠포드 대학으로 옮겼고, 그 시기 역시 Networking Group의 멤버였던 Bob Khan은 일하고 있던 회사와의 계약을 끝내고 ARPAnet의 수석 설계자로 합류했다.  

 

1972 10ARPAnet은 워싱턴 DC의 국제 컴퓨터 통신 컨퍼런스(ICCC)에서 처음으로 공개시연을 가졌다. 이 컨퍼런스 이후, Vinton Cerf를 수장으로 하는 International Networking Group이 창설되었다.

 

Bob Kahn1973년 봄 스탠포드에 방문했고 그와 Vinton Cerf는 동일하지 않은 여러 패킷 네트워크를 상호 연결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그 당시 TCP의 기본 개념을 개발하고 새로 설립된 International Networking Group에 제출했다. 이 회동과 개발이 사실상 인터넷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처음으로 Interne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아마도 Internetworking이라는 단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축약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문서에 나타난 첫번째 Internet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1974Vincent Cerf의 글에서였다.

 

1975년 첫번째 프로토 타입에 대한 시험이 실시되었다. 3년간 개발기간을 거친 후 1978TCP/IPv4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TCP/IP를 사용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렸다. 사실 1983년까지 ARPAnet에도 공식적으로는 추가되지 않았다.

 

따라서 인터넷의 시작은 실패한 군 및 학술 연구 프로그램 구성 요소의 예기치 않은 결과에 따른 것이었으며, 냉전 시기 펜타곤이 아니라 1980년대 미국 서부권 문화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이 것이 인터넷 기원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일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음 글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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