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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과 보험



현대 자본주의 경제하에서는 사실상 모든 것이 거래의 대상이다. 리스크도 예외는 아니다. 시장에서 이미 알려진 리스크는 이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나 기관에게 판매된다. 교통사고가 나서 큰 부상이나 재산상의 손해를 입는 것은 개인의 의지를 벗어난 일이지만, 수많은 회원과 가입자 그리고 주주들이 함께하는 보험회사에서는 충분히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리스크이다.

 

리스크를 거래하는 것은 이런 보험업계에서 출발했다. 위험을 신중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이는 도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각 시장 참여자들이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정보, 그리고 대상 위험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 이런 도박이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리스크를 거래하는 이유는 똑같은 리스크를 놓고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번 주 있을 축구 경기에서 아스날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고 또 다른 사람은 첼시가 이길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결과에 대해 도박을 걸 수 있다. 그리고 분명 둘 중 한명은 이기고 다른 사람은 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서로 다르게 믿는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자면 이 내기에서 이기는 것은 결국 도박업자이지만 말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런 신중한 보험과 무모한 도박이 함께 거래된다. 이는 투자자들에게는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며, 또 도박꾼들에게는 이자 수익률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양면성으로 인해 시장참여자들은 가격을 안정시키면서 수익을 낼 수 있게 된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확천금에 대한 욕심이 보험에 대한 동기를 압도할 때, 투자는 불안정해지고, 보험을 통해 최소화하려 했던 리스크는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 그리고 규제당국이 보험이라고 여겼던 상품들이 실은 도박이었다면, 시장에서 이들의 행위는 위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극대화하게 된다. 규제당국이 보험이었다고 판단했던 도박에 가까운 상품들은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왔던 주된 요인이었다.

 

이런 보험과 투기라는 양면성은 리스크 거래 시장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보험과 투기의 상호작용은 금융 역사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 일어났던 4가지 중요한 변화가 리스크를 보는 우리의 관점과,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제도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커피의 원산지는 아라비아 지역이었다. 그리고 커피가 유럽에 소개된 것은 16세기였다. 커피하우스는 1650년 이전에 비엔나에서 생겨났고, 1654년에는 옥스포드 대로에 Grade Café가 문을 열면서 영국에도 커피가 소개되었다. 유행은 빠르게 번져갔고, 영국의 신사들은 커피숍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비즈니스 그리고 내기를 했다.


사람들이 모이던 커피하우스에서 도박과 보험은 시작되었다.

 

이 시대는 도박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때였다. 역사가 기록되기도 전부터 인류는 도박을 했다. 선사시대의 유적에서는 동물의 뼈로 만든 주사위가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도박은 국가나 사회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하고 다시 허용되기도 했다. 잉글랜드에서 1660년대의 왕정복고로 인해 청교도적 엄격한 탄압에서 벗어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도박에 대한 태도도 느슨해졌다.

 

또 다른 발전은 인류의 확률에 대한 이해의 증가였다. 역사학자들은 확률의 발전을 1654년 두명의 프랑스 수학자 블레이즈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 사이의 편지에서 발견했다. 이 편지는 파스칼과 카드게임에 관심이 많았던 귀족 드 메레 사이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확률의 발견이 인류 지성사에서 이렇게 늦게 이루어진 것은 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뛰어난 수학자들이었던 고대 그리스인들도 도박을 즐겨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개념인 확률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17세기 이전까지는 현대적 의미에서 확률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 행운은 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었으며, Probable이란 단어의 어원은 Approve의 어원과 같다. 그리고 Probable최고의 권위에 의해 허용된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심지어 18세기에도 에드워드 깁슨이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에 대한 기록에 대해 티투스 리비우스의 설명이 더 Probable 하지만, 폴리비우스의 기록이 사실로 보인다라 설명했는데, 이는 티투스 리비우스의 기록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또 인정받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었다. 확률론적 사고의 발전은 권위와 종교적 사고에 대한 거부감을 들어낸 계몽주의 운동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현대적 보험의 발전




최초의 보험회사인 The Hand in Hand Insurance Company.

 

또한 현대의 보험은 그 뿌리를 17세기 후반에서 찾을 수 있다. 보험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계약은 먼 과거에도 찾을 수 있지만, 1666년 런던의 대화재로 인해 보험 산업이 태동되었다. The Hand in Hand 보험회사는 1696년에 설립되었는데, 이는 현존하는 보험 회사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있는 것이다. (지금은 Aviva의 자회사로서 존재한다.) 


이 회사는 오늘날의 보험회사들과는 달리 화재가 발생하면 보상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소방관들을 보냈다. 런던의 일부 건물들에서는 오늘날에도 이 회사가 남긴 화재보험 마크가 남아있는데, 보험회사의 소방관들이 보험에 가입한 고객의 건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표시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그리 효율적이지 못했다. 서로 다른 민간 소방회사들이 난립했고, 이들은 서로 협약을 맺어 협조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지만 19세기에 들어서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소방방재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사라졌다.

 

런던의 커피숍은 주로 주인의 이름을 그대로 상호로 사용했는데, 여러가지 업무를 위한 사업장으로서 기능했다. Tom’s coffee shop은 보험업계의 초기 중심지였으며, Jonathan’s coffee shop은 증권거래소의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 런던 증권 거래소의 시초로 여겨진다. 또 다른 유명한 커피숍이었던 White’s coffee shopBrook’s coffee shop은 도박장이었다.

 

가장 유명한 커피숍은 바로 에드워드 로이드(Edward Loyld)의 커피숍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날씨와 조류에 따라 바다에 항해중인 배의 운명을 놓고 내기를 했다. 그리고 상인들은 곧 이곳을 먼 바다로 항해하는 무역선들의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대책으로 이용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경위로 인해 이 커피숍은 곧 우리가 알고 있는 런던의 유명한 보험회사 로이드로 발전하게 되었다. 도박과 보험 그리고 보험통계학이 연결되기 시작한 곳은 17세기의 커피숍이었다. 유흥과 비즈니스 그리고 정교한 분석이 혼합된 이 역사는 약 350년 뒤인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 이르러서 절정을 맞이하게 되었다.

 

초기 보험은 주로 화재나 해양보험에 관련된 것이었지만, 보험 통계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곧 생명보험과 같은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평균 수명을 평가할 수 있는 정확한 통계의 수집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17세기 중반 존 그랜트는 장례식 기록을 조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사망률 표를 작성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생명보험이 확대된 것은 한 세기 후 에퀴터블생명보험(The Equitable Life Assurance Society)이 설립된 이후였다. 여기서 Equitable공정한이란 뜻인데, 이는 보상금이 일정한 보험통계 원칙에 따라 설정되기 때문이었다. 대조적으로 커피하우스에 모인 사람들은 수학적 모델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왕이 죽을지 혹은 해군 제독이 해임될지 따위에 대해 도박을 걸었다.

 

불쾌함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런 도박은 위험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웃의 목숨 혹은 이웃의 집의 화재에 대한 보험을 들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1768년 런던의 한 신문에서는 영국인 2 1명의 목에 대한 보험이 걸려있으며, 심지어는 현 의회가 1년안에 해산된다는 것에 대한 보험도 있다. 행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정부가 보험시장에 개입하였다. 법원은 Uberrimae fides 선언을 작성했는데, 보험가입자가 리스크 평가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한 보험 계약은 무효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피보험 이익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는데 보험금을 청구하려는 사건으로 인해 보험 가입자 본인이 명백하게 물적, 정신적, 금융적 손실을 입을 때에만 보험을 가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의 목적은 경제적 손익에 따른 보험과 단순한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는 도박을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노력이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했는데, 이 법의 결과 보험은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도박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도박빚은 오롯이 사회적, 개인적 명예에 따른 구속만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규정은 2005년가지 영국 법에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도박 회사 William Hill이 소송에서 승리함으로써 폐지되게 되었다.


Carbolic Smoke Ball 회사는 100파운드 배상 약속은 도박이기 때문에 회사는 이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 주장했다.

 

1892년에 있었던 Carlill vs Carbolic Smoke Ball Company의 소송은 법률교수들이 좋아하는 사건인데, 비록 소송 자체는 우스꽝스러운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영국 법의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 Carbolic Smoke Ball Company는 일종의 과장광고를 했는데, 특히 회사의 스모크 볼을 사용하면 독감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이 제품에 너무나도 자신감을 가진 나머지 제품을 지시에 따라 사용한 후 독감에 걸리면 100파운드를 배상하겠다고 광고했다. Louisa CarlillCarbolic사의 스모크 볼을 10실링을 주고 구매했고, 설명서에 따라 하루에 3번 정확히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arlill은 독감에 걸렸고, 회사에 100파운드 배상을 요구했다. 회사는 2번의 편지를 무시했지만, 3번째 편지에 답장을 보내, 회사의 사무실로 직접 와서 검사를 받으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서 Carlill측은 회사를 고소했다.

 

회사측의 변호인은 Herbert Asquith라 하는 젊은 변호사였는데, 훗날 영국의 총리가 된다. 아무튼 그는 꽤 영리한 방어 논리를 주장했다. 회사가 보상해주겠다고 한 100파운드는 도박이라는 것이었으며, 그러므로 도박에 걸린 돈은 법적 보호대상이 아니기에 회사에서는 Carlill에게 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소송의 결과는 회사측의 패배로 끝났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법원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보험 분야에 적용된 수학적 통계학의 발전은 급격하게 일어났다. 통계적 추론 이론은 생산과정에서의 품질 평가에 대한 수학적 토대를 마련하였고, 유권자 설문 조사를 기반으로 한 여론에 대한 논란도 생겨났다. 그리고 새로운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에 대한 이론도 바로 이 시대에 시작되었다. 수학의 확률론은 마침내 20세기 들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시분야에서 고전적 역학법칙을 거부하는 양자역학이 등장함에 따라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다.




파생금융상품과 도박



한편,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선택이론으로 위험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떻게 똑 같은 사람이 경마장에서의 도박의 리스크는 얼마든지 감수하지만, 주택 보험의 갱신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1948년 밀턴 프리드먼과 시카고학파의 일원이었던 레오나르도 세비지 교수와 함께 이런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설명을 내놓았다. 이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일단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추가적인 수익은 그리 큰 심리적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수익이 어느 수준이상 훨씬 더 높아지면, 심리적 만족감은 다시 급격히 커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어느 수준 이상의 수익은 삶의 질을 확 달라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설명은 조금 작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실제로도 그랬다. 최근 다니엘 프리드먼(밀턴 프리드먼과 관계 없음)과 동료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난 60년간의 경험주의적 연구와 결론은 특정한 샘플 이외의 예측을 잘 설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프리드먼-새비지의 분석은 어떤 특정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동에서 관찰되는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경제학자들에겐, 어떠한 설명이라도 그들의 합리성개념을 조금이라도 지지한다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가정은 금융시장에 대한 실무와 감독을 모두 관장하는 사고방식의 한계로 작동하였다. 이 한계 내에서는 리스크와 도박에는 아무런 차이를 발견하지 못한다. 리스크와 도박 모두 위험 감수라는 명목아래 개인의 합리적 선택의 자유로 포장된다. 그리고 중앙은행과 다른 금융 감독기구들은 이러한 잘못된 태도를 지난 금융위기가 터지기 까지, 그리고 터진 후에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보험과 도박의 구분을 무색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박과 보험 사이의 법적 구별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Carlil Carbolic Smoke Ball 회사 사이의 법적 분쟁과 피보험 이익에대한 개념은 1990년대 CDS(Credit Default Swap)이 발명된 이후로 중요해졌다. CDS 즉 신용부도스와프는 부도의 위험만 따로 떼어내서 사고파는 신용파생상품이다. 다시 말해 대출 채권이 파산 날 경우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을 만든 것이다. CDS를 구매한 다는 것은 해당 대출 채권이 부도날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CDS발행자들은 대게 보험회사들이었다. 특히 미국의 최대 보험회사 AIG의 런던지부에서 엄청난 양의 CDS를 발행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보험회사 이외에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 파생상품을 발행할 수 있고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있었다. 심지어 원 채권과 관련 없는 제 3자도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CDS를 거래할 수 있었다.


 

만약 CDS가 보험 상품이라면, 이는 보험 정책과 제도하에 과세와 규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도박이라면 도박 세금과 규정에 따라 규제가 이루어져야 하며, 일반적인 계약법에서 면제가 되었을 것이다. 국제 스와프 및 파생 상품 협회(International Swaps and Derivatives Association)은 런던의 법정 변호인인 Robin Potts에게 CDS의 법적 지위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PottsCDS가 도박과 보험 양자 모두 아니라고 회신했다. 이는 정확히 협화가 원하던 대답이었다. 덕분에 CDS는 법적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회신은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리 수용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런던은 전 세계적은 CDS 거래의 허브가 될 수 있었다. 미국 역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2000년 상품선물 현대화 법에 서명하면서 유가 증권 규제에서 대부분의 파생 금융 상품은 완전히 면제되었다.

 

2005 4월 영국에서 도박법이 발효되었는데 동 법 제 17항에서 1710년에 제정된 도박에 관한 법령을 철회했으며, 덕분에 더 이상 도박에 관련된 계약이라는 이유로 강제력을 지니지 아니하지않게 되었다. 그리고 런던은 도박꾼들의 천국이 되었다.

 

20년간 미국의 경제 대통령이었던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


한편 미국 와이오밍 주 잭슨 홀에 위치한 캔자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서 연례 심포지움이 열렸고 전 세계 금융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운집했다. 2005년에 있었던 이 회의는 그린스펀의 시대를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에서 20년 동안 재임했던 그린스펀은 오랜 임기를 끝내고 다음 해 물러날 예정이었다. 그린스펀의 임기 중 CDS와 같은 신용 관련 파생 상품 시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파생 상품으로 거래 되고 있는 명목 자산은 전 세계 자산의 총 합보다 더 컸다.

 

그런데 이 파생상품이 정말 도박일까? 아니면 보험일까? 이 심포지엄에 참가했던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라구람 라잔은 이 새로운 제도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는 시장이 롱 테일 리스크를 끌어안고 있다 표현했다. 이는 실제 일어날 가능 성은 매우 작지만, 만약 진짜로 현실화되면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될 사건에 시장이 과도한 베팅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이 롱 테일 리스크는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서로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단 한발의 총성이 이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위험의 가능성은 명백했다.

 

CDS를 가장 많이 발행한 AIG 금융상품그룹의 CEO였던 Joseph Cassano는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매우 비꼬듯이 설명했다. 그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위험을 지는 것이 즐겁다고 표현한 것이다. 2007년엔 심지어, “우리가 이 거래를 통해 단 돈 1$라도 잃을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까지 말했다.

 

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멤버였던 Don Kohn은 라구람 라잔이 도박과 보험을 헷갈려하고 있는 것 같다며 비판했다. “금융기관들이 위험을 분산하도록 함으로써, 리스크 측정을 더 정확하게 하며, 리스크 관리를 개선하게 되어 더 안전해졌습니다.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탄력성이 향상되었습니다. , 실물 경제에 끼치지 않으면서도 금융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 하버드 교수이자,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으로 근무했던 래리 서머스는 라잔의 논문을 러다이트라며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도박과 보험의 차이에 대한 더 정확한 구별을 알려주는 사건이 2005년 잭슨 홀 컨퍼런스 직후 발생했다. 이는 2008AIG의 파산과 850억 달러에 달하는 미 정부의 구제 금융보다 더 즉각적이었다. 컨퍼런스의 참가자들이 돌아가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 올리언스로 들이 닥쳐 최소 1,800여명이 사망했고, 세계 보험 업계 역사상 가장 많은 보험금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미국의 헷지펀드 매니저인 존 폴슨과 동료들이 이른바 Big Short를 만들었다.(이는 지난 금융위기를 다룬 영화와 그 원작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존 폴슨은 끝 없이 상승하던 미국의 주택시장이 곧 붕괴할 것임을 직감하고 주택가격이 하락하는데 베팅하길 원했다



그는 투자회사들에게 의향을 타진 한 뒤 골드만 삭스와 함께 부실위험이 높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들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합성 CDO(부채담보부증권)를 만들어 일반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하지만 폴슨은 다른 투자자들과 달리 주택가격의 하락할 것임을 예상하고 이와 연계된 CDS를 매입했다. 123개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대출저당증권을 기초로하는 이른바 아바쿠스 프로그램을 통해 판매된 CDO는 총 백억 달러 규모가 넘었으며 폴슨은 이를 통해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10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뒀으며 이를 지원한 골드만 삭스는 4천만 달러의 수수료를 벌었다.

 

실제 홍수에 대비한 보험과 합성 신용파생상품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파산한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도박의 결과는 역사에 기록되었다. 2007-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이 붕괴했다. 폴슨과 그 동료들은 골드만 삭스의 고객의 희생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 패배자들은 중앙은행에 의해 구제되었다. (AIGCEO였던 Cassano 역시 해고 되었지만, 사임 후에도 AIG와 연간 1 백만 달러가 넘는 컨설팅 계약을 맺은 것이 드러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2010년 골드만 삭스의 고위 간부들은 상원위원회에 출석하여 아바쿠스 프로그램에 대해 증언했다. 민주당의 Carl Levin 상원의원이 직원들이 이메일에서 이 거래에 대해 뭐 이런 말도 안되는 거래가 있다니.’ ‘완전히 미친 소리라는 대화를 나눈 것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라 나눈 기록을 보거나 직원들에게 보고를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라 물어보자, 골드만 삭스의 최고 재무 책임자(CFO)David Viniar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라 대답했을 뿐이었다. 이는 완전히 uberrima fides 혹은 피보험 이익에 대한 현대의 개념과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 처음 듣는 사람들은 대부분 도박과 보험에 대해 모두 더 엄격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한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PottsCDS가 도박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을 때, 그 당시에 이는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와 같은 상품들은 규제차익을 노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그저 정석적인 거래와 같은 효과를 누리되 법적 규제를 덜 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대출금액만큼 자본이 필요한 반면, 보험회사는 예상되는 손실 규모만을 고려하면 되었다. 만약 엑슨 모빌 같은 우량회사들이 엄청나게 많은 액수를 대출한다 하더라도 예상되는 손실 규모가 매우 작다면, 은행에서 대출하는 것보다 차라리 보험을 드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는 의미이다.

 

금융 부분에서 CDS를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훼손하는 위험으로 인지하게 된 것은 이 보다 훨씬 더 나중의 일이다. JP 모건에서 CDS를 만드는데 일조한 Blythe Masters와 본인의 의견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알지 못했던 Potts와 같은 사람들은 이들의 발명품이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당연히 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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